종교개혁주일, '오직'을 강의 아닌 선포로
임솔성
10월 마지막 주일이 가까워지면 종교개혁주일 설교가 돌아와요. 그런데 다섯 솔라를 어떻게 다 담을지부터 막히곤 해요.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차례로 설명하다 보면 어느새 설교가 교리 요약 강의처럼 흘러요. 이 글은 다섯을 다 훑는 대신, 회중이 오늘 기댈 '오직' 하나를 골라 은혜로 선포하는 본문과 구조를 잡아드려요.
다섯 솔라는 루터가 준 목록이 아니에요
먼저 한 가지를 짚고 가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요. 우리가 아는 '다섯 솔라'는 종교개혁 당시에 한 세트로 묶여 나온 목록이 아니에요. 다섯이라는 묶음은 20세기에 정리됐어요. 1916년 루터파 학자 시어도어 엥겔더가 '성경·은혜·믿음' 세 원리로 먼저 정리했고, 이후 학자들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광을 더해 다섯으로 굳었어요. 표어로서의 '다섯 솔라'는 후대의 정리이고, 그 안에 담긴 확신은 16세기의 것이라는 뜻이에요.
절기 도입에서 자주 꺼내는 장면 하나도 확인하고 넘어가면 좋아요.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못 박았다는 이야기인데, 이 '문에 못 박음'은 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어요. 루터 자신은 못 박았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그 장면을 기념하는 전통은 17세기 중반에 자리 잡았거든요. 논쟁 없이 분명한 사실은 하나예요. 루터가 95개 논제를 써서 배포했고, 거기서 종교개혁이 시작됐다는 것이요.
이 두 가지를 확인하고 나면 압박이 하나 풀려요. 종교개혁주일 설교가 다섯을 빠짐없이 담아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종교개혁의 심장은 죄인이 구원의 확신을 어디서 찾느냐는 물음에 다시 답한 자리였어요. 그 답을 붙들면, 다섯 중 하나만 깊이 다뤄도 종교개혁주일 설교는 충분히 단단해요.
'오직'은 외울 교리이기 전에 기댈 자리예요
다섯 솔라를 교리 목록으로 보면 나열하고 싶어지지만, 하나씩 뜯어 보면 저마다 '불안한 양심이 어디에 기대는가'를 가리켜요. 오직 성경은 무엇을 신뢰하느냐고 물어요.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은 구원이 내 손으로 쌓은 성취가 아니라 값없이 받는 선물임을 짚어요. 종교개혁의 심장이 바로 여기예요. 오직 그리스도는 누구를 통해 하나님께 가느냐를, 오직 하나님께 영광은 그 모든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를 가리켜요.
이렇게 보면 다섯 솔라는 강단에서 설명할 교리이기 전에, 회중이 저마다 발 딛고 설 자리예요. 칼뱅도 "교리 자체는 아무런 유익도 줄 수 없다"고 했어요. 교리가 회중의 삶에 닿아 은혜를 경험하게 할 때 비로소 설교가 된다는 뜻이죠. 종교개혁주일 설교의 방향도 여기에 있어요. 다섯 개념을 정확히 전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하나가 회중을 어디에 세우는지까지 선포하는 자리예요.
한 가지는 조심하면 좋겠어요. 다섯 솔라는 장로교·감리교·성결교·침례교가 함께 물려받은 개신교 공통의 유산이에요. 그러니 한 진영의 해석을 유일한 정답처럼 못 박기보다, 회중이 함께 딛고 설 복음의 자리로 여는 게 절기의 결에 맞아요.
다섯을 다 담지 말고 하나를 깊이 파요
그럼 어느 '오직'을 고를까요. 기준은 이번 회중이 지금 어디서 흔들리는가예요. 회중의 자리에 맞춰 이렇게 잡아 볼 수 있어요:
- 확신이 흔들리는 회중 — 오직 은혜·오직 믿음. 내가 잘해서 받은 구원이 아님을 다시 딛게.
- 말씀보다 경험·유행에 쏠린 회중 — 오직 성경. 무엇 위에 서 있는지를 다시 묻게.
- 자기 공로와 성취로 지친 회중 — 오직 그리스도. 나 대신 이루신 분께 무게를 옮기게.
- 사람과 프로그램에 공을 돌리기 쉬운 자리 — 오직 하나님께 영광. 모든 결실의 방향을 다시 세우게.
하나를 정하면 나머지 넷은 버리지 않아요. 그 하나를 떠받치는 배경으로 뒤에 둬요. 오직 은혜를 설교한다면, 오직 그리스도와 오직 성경은 은혜가 어디서 오고 무엇으로 확인되는지를 받쳐 주는 자리로 잠깐씩 얼굴을 비추면 돼요. 다섯을 균등하게 벌여 놓는 대신 하나를 끝까지 따라가면, 회중은 개념 다섯 개 대신 오늘 기댈 자리 하나를 손에 쥐고 돌아가요.
본문부터 정해요
고른 '오직'을 정면으로 다룰 본문을 잡아 볼게요. 종교개혁의 표어절로 오래 읽힌 자리는 로마서 1장 16~17절이에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구절에서 루터가 이신칭의를 다시 붙들었고, 오직 은혜·오직 믿음·오직 성경이 한자리에서 만나거든요. 로마서 전체 흐름 속에서 이 주제절이 어디에 놓이는지는 로마서 한눈에 보기에서 지도처럼 펼쳐 뒀어요.
각 솔라를 좀 더 좁게 다루고 싶으면 본문을 이렇게 나눠 볼 수 있어요.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은 에베소서 2장 8~9절, 오직 그리스도는 요한복음 14장 6절이나 사도행전 4장 12절, 오직 성경은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이 곧장 닿아요. 절기 본문을 무엇으로 정할지부터 막힌다면 본문, 무엇을 정할지부터 막힐 때를 먼저 참고하세요.
회중의 언어로 옮겨요
본문을 정했으면 고른 '오직'을 회중의 오늘 언어로 옮기는 일이 남아요. '오직 은혜'를 라틴어 솔라 그라티아로 소개하고 교리사로 풀면 회중은 강의를 들은 기분으로 돌아가요. 같은 은혜를 "이번 주도 내가 이미 받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삶의 문장으로 옮기면 그제야 은혜가 회중의 자리에 닿아요.
그래서 설교 전체를 한 문장으로 좁혀 두면 좋아요. 예를 들면 "구원은 내가 붙잡아 지키는 일이기 전에, 이미 나를 붙드신 은혜에 기대는 일입니다" 같은 한 문장이요. 이렇게 빅 아이디어를 한 줄로 잡는 법은 설교, 한 줄로 좁히기에서 더 다뤘어요.
종교개혁주일 설교는 "우리도 개혁하자"는 결심 권면으로 끝나기 쉬워요. 은혜를 먼저 선포한 뒤 응답으로 흐르게 잡으면 도덕적 명령으로 빠지지 않아요. 이 흐름을 짜는 법은 적용이 도덕주의가 되지 않으려면에서 자세히 풀어 뒀어요.
'오직'이 다시 기댈 자리가 될 때
종교개혁의 힘은 죄인이 어디에 기대야 하는지를 다시 찾은 데서 왔어요. 종교개혁주일 설교도 그 자리를 회중의 손에 쥐여 줄 때 살아나요. 본문만 정하시면, 방금 짚은 못 박음 이야기나 솔라의 유래처럼 사실 확인이 필요한 자리까지 검증된 주석과 원어로 함께 여는 게 설교 스페이스가 하는 일이에요.
이 글은 공개된 종교개혁 자료와 성경 본문(개역개정)을 토대로 정리했어요.
참고한 자료
- 다섯 솔라는 20세기에 정리된 표어(엥겔더 1916 등) — 위키백과, '다섯 솔라' / The Gospel Coalition, 'The Five Solas'
- 95개 논제 '문에 못 박음'의 사학적 논쟁(이제를로 1961) — Britannica, 'Ninety-five Theses'
- 종교개혁주일(10월 마지막 주일)의 유래·의미 — 위키백과, '종교개혁기념일' / 주간기독신문 사설
- 교리 강의와 설교의 구분(칼뱅 "교리 자체는 아무런 유익도 줄 수 없다") — 한국성결신문, '종교개혁주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인용 성경 본문 — 로마서 1장 16~17절 · 에베소서 2장 8~9절 · 요한복음 14장 6절 · 사도행전 4장 12절 ·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