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설교할지부터 막힐 때
임솔성
빈 화면 앞에서 손이 멈출 때, 우리는 흔히 문장력을 탓해요. 그런데 막상 들여다보면 '무엇을 설교할까'부터 안 정해진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 쓸지 고민하기도 전에, 무엇을 펼지에서 이미 한 주가 흔들리는 거죠.
막히는 건 쓰기가 아니라 고르기예요
설교 준비가 어렵다고 할 때, 정작 어려운 건 글쓰기 단계가 아닐 때가 많아요. 본문이 손에 쥐어지면 주해하고 개요를 잡는 일은 길이 보이거든요. 문제는 그 앞이에요. 이번 주에 무엇을 펼지부터 안 정해지면, 한 주가 통째로 흔들려요. 스펄전도 설교할 본문을 기다리며 "몇 시간이고 기도하며 앉아 있는 것, 그것이 내 공부의 본령"이라고 했어요. 본문을 고르는 일이 준비의 곁가지가 아니라 한복판이라는 거죠.
그런데 본문을 늦게 고르면 비용이 커요. 미국 개신교 목사를 조사한 라이프웨이 리서치(2016)에서는 22%가 설교 주제를 불과 한 주 전에 정한다고 답했어요. 본문을 늦게 잡을수록 정황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마땅한 예화를 찾고, 적용을 벼릴 시간이 줄어들죠. 본문을 빨리 정할수록 그 뒤가 깊어지는 구조예요.
한국 교회도 본문에서 출발하는 설교를 가장 많이 찾아요. 목회데이터연구소가 2026년 목회자 521명에게 물었더니, 가장 필요한 설교 유형으로 '본문 중심 강해설교'를 첫손에 꼽았어요(60%). 본문이 출발점인 설교가 주류라면, 그걸 고르는 일부터 잘 해야 하고요.
본문을 고르는 세 갈래 길
본문을 고르는 길은 크게 세 갈래예요. 어느 하나가 정답은 아니고, 노련한 설교자일수록 셋을 섞어요.
첫째, 연속강해예요. 성경 한 권을 1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순서대로 강해하는 방식이죠. 뿌리가 깊어요. 1519년 1월 1일, 취리히의 츠빙글리가 그날 지정된 본문 대신 마태복음 1장 1절부터 한 절씩 이어 설교하면서 시작했어요. 장점은 분명해요. 다음에 펼 본문이 이미 정해져 있어서, 매주 '무엇을 고를까'라는 부담 자체가 사라져요.
둘째, 교회력과 성구집이에요. 성구집(렉셔너리)은 절기마다 읽을 본문을 미리 정해 둔 목록을 말해요. 대림절·사순절·부활절 같은 절기의 흐름을 따라가거나 이 목록을 따르는 방식이죠. 이 길은 설교자가 좋아하는 주제, 이른바 '애착 본문'으로만 강단이 기울지 않게 회중을 지켜 줘요. 불편한 본문을 슬쩍 건너뛰거나 입맛대로 골라 읽는 걸 막아 주는 거고요.
셋째, 회중의 상황과 시의성이에요. 양 떼가 지금 통과하는 현실에서 출발하는 길이죠. 절기, 세상에서 벌어진 사건, 회중의 목회적 필요, 그리고 나를 사로잡은 한 본문까지 결이 여러 가지예요. 본문은 책상 위에서만 정해지지 않고, 강단 아래의 삶과 맞닿아 정해져요.
한 길만 고집할 때의 그림자
세 길에는 저마다 그림자가 있어요. 그래서 한 길만 끝까지 고집하면 탈이 나요.
연속강해만 고수하면 교회 밖 달력과 어긋날 수 있어요. 한 책을 끝까지 이어 가다 보면, 교회력은 물론 민족의 절기나 긴급한 회중의 형편과 동떨어진 본문을 펴야 하는 주가 생기거든요. 반대로 성구집만 따르면 흐름이 잘게 끊기고, 시의성만 좇으면 매주 내 관심사를 따라가다 성경 전체의 균형을 잃어요.
답은 섞는 거예요. 큰 틀은 연속강해나 교회력으로 미리 짜 두되, 절기와 회중의 형편을 분기마다 겹쳐 보는 거죠. 그러면 본문 선택이 토요일 밤의 즉흥에서 미리 정해 둔 계획으로 바뀌어요.
가장 큰 함정: 본문이 아니라 내 메시지를 고를 때
길을 정했어도 한 가지 함정이 남아요. 본문을 고른 게 아니라, 사실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정해 두고 거기 맞는 본문을 끌어다 붙이는 경우예요. 신학에서는 이걸 아이세게시스(eisegesis)라고 불러요. 본문에서 뜻을 끌어내는 대신, 내 생각을 본문에 밀어넣어 읽는 일을 가리키죠.
영국 목회자 찰스 시므온은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애쓰는 일은 성경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지, 있을 법하다고 내가 여기는 것을 밀어넣는 게 아니다." 좋아하는 본문만 자꾸 돌아가는 것도, 누군가를 향해 한 방 날리려고 본문을 고르는 것도 같은 자리에서 나와요.
막는 길은 순서를 지키는 거예요. 메시지를 정해 놓고 본문을 찾지 말고, 본문을 먼저 정한 뒤 그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 검증된 주해로 듣는 거죠. 설교 스페이스가 해석을 지어내지 않고 검증된 주석 위에서 돕는 이유도 여기 있어요(자세한 결은 설교 스페이스는 다른 AI와 무엇이 다를까에서요).
본문을 정했다면, 다음은 구조예요
본문을 빨리, 바르게 정할수록 그 뒤가 깊어져요. 이제 그 한 본문을 어떻게 들리게 짤지가 남아요. 그 이야기는 청중이 따라오는 설교의 구조에서 이어 갈게요. 본문만 정하면 그 뒤의 주해·개요·원고를 곁에서 함께 준비하는 게 설교 스페이스가 하는 일이에요.
이 글은 정통 설교학 문헌과 공개 자료를 토대로 정리했어요(주석·설교 본문 재현 없이 출처만 밝혔습니다).
참고한 글
- 본문 선택의 중요성 — C. H. 스펄전, 『목회자 후보생들에게』(Lectures to My Students) 6강 '본문 선택에 관하여'
- 연속강해(lectio continua)의 기원·츠빙글리 1519 — Crossway, 'A Brief Introduction to the Life and Ministry of Ulrich Zwingli' · Christian History Institute
- 교회력·성구집의 유익 — Luther Classical College, 'Is the Lectionary Actually Important?'
- 아이세게시스(eisegesis)와 찰스 시므온 — Ligonier, 'Exegesis and Eisegesis'
- 설교 준비 시점 조사(미국) — Lifeway Research, 'Planning Your Preaching' (2016)
- 한국 목회자 설교 유형 수요 — 목회데이터연구소(2026), 기독일보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