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표절, 어디까지가 참고일까
임솔성
"이 설교 참 좋은데, 이만큼 참고해도 되나." 다른 목회자의 설교나 주석을 펼쳐 놓고 준비하다 이런 망설임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참고 자체는 잘못이 아니에요. 좋은 설교는 늘 앞선 사람들의 묵상 위에 서니까요. 진짜 물어야 할 건 따로 있어요. 어디까지가 참고이고 어디부터가 표절일까요. 그 경계를 알면, 오히려 마음 놓고 더 넓게 참고할 수 있어요.
참고는 준비의 정상적인 일부다
먼저 안심하고 시작해요. 남의 자료를 참고하는 건 준비의 당연한 과정이에요. 문제는 그 경계가 흐릿하다는 데 있어요. 얼마나 흐린지는 조사 수치가 오히려 보여 줘요. 한국목회자협의회의 설교 표절 포럼에서 생명언어설교연구원은 목회자의 90% 이상이 표절 설교를 한 적이 있다는 설문 결과를 내놨어요(뉴스앤조이 보도). 그보다 앞선 2007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조사에서는 43%가 "타 목사의 설교를 그대로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요.
수치가 이렇게 벌어지는 건 조사가 부실해서가 아니에요. 무엇을 표절로 볼지 기준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어디까지가 참고냐는 물음에 아직 합의된 선이 없다는 뜻이죠. 그래서 경계의 한쪽 끝, 누구나 표절이라 부르는 지점부터 잡아 두면 나머지가 또렷해져요. 예장 고신은 2017년 총회에서, 다른 설교자의 설교를 자기가 쓴 것처럼 반복적이고 의도적으로 가져다 편집하거나 인용하는 행위를 설교 표절로 규정했어요. 특정 교단만의 고민은 아니에요. 여러 교단이 오래 같은 자리에서 씨름해 온 문제예요.
표절은 네 가지 얼굴로 온다
명백한 통째 베끼기만 표절인 건 아니에요. 목회 현장에서 지적돼 온 형태는 크게 넷이에요:
- 통째로 베끼기 — 남의 설교문을 거의 그대로 강단에 올려요. 누구나 표절로 아는 자리예요.
- 구조를 그대로 가져오기 — 문장은 바꿨지만 대지·전개·예화 배치까지 원본의 뼈대를 그대로 따라가요.
- 여러 편 짜깁기 — 서너 편에서 좋은 대목만 오려 붙여요. 어느 하나를 통째로 베끼진 않았다는 이유로 안심하기 쉬운 자리예요.
- 문장 도용 — 다른 설교자의 깊은 묵상에서 나온 표현 한 줄을, 마치 내가 얻은 통찰처럼 출처 없이 말해요.
헷갈리는 건 첫 번째보다 두 번째와 세 번째예요. "내 문장으로 다시 썼으니 괜찮다"고 넘기기 쉽지만, 논증의 뼈대와 통찰이 남의 것이라면 표절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아요.
경계를 가르는 건 세 가지다
그럼 참고와 표절은 무엇으로 갈릴까요. 국내외 설교학이 공통으로 짚는 판단 기준은 셋이에요:
- 얼마나 가져왔나 — 한두 문장의 인용과 설교 전체의 골격을 옮겨 오는 건 다른 무게예요. 분량이 커질수록 밝히는 책임도 커져요.
- 밝혔나 — 가져왔다는 사실을 회중이 알 수 있게 표시했는지가 핵심이에요.
- 내 것으로 소화했나 — 기본 아이디어를 내 본문 묵상으로 다시 세웠는지, 아니면 남의 완성품을 그대로 옮겼는지예요.
이 셋 중 실제로 표절을 가르는 건 베꼈느냐가 아니라 밝혔느냐예요. 좋은 통찰을 빌리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에요. 빌리고도 안 빌린 척하는 게 문제죠. 반대로 기본 아이디어나 널리 알려진 개념을 내 본문으로 소화해 다시 풀었다면, 그건 매번 출처를 달지 않아도 되는 참고의 영역이에요. 설교학이 말하는 '내 것으로 만든다'가 바로 이 소화 과정이에요.
강단에선 각주 대신 소리 내어 밝힌다
여기서 현실적인 고민이 하나 생겨요. "설교가 논문도 아닌데, 문장마다 각주를 어떻게 다나." 맞아요. 구술인 설교에 문서식 각주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래서 강단에는 강단의 방식이 있어요. 소리 내어 한 마디 얹는 거예요.
"한 주석가는 이 구절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제가 어느 목사님의 설교에서 얻은 통찰인데요." 이 한 마디면 충분해요. 특히 그 자료가 설교의 결정적인 통찰을 준 지점이라면 밝히는 게 좋아요.
걱정과 달리, 출처를 밝힌다고 설교의 힘이 죽지 않아요. 오히려 회중은 목회자가 정직하게 공부했다는 걸 느껴요. 예화를 정직하게 밝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설교 예화, 믿을 수 있게 쓰는 법에 따로 정리해 뒀어요. 여기서는 예화를 넘어 원고·구조·논증까지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는 것만 짚을게요.
AI 시대, 베끼기의 마찰이 사라졌다
경계가 늘 이렇게 무거운 건, 베끼기가 갈수록 쉬워지기 때문이에요. 온라인에는 설교문과 녹취를 제공하거나 사고파는 사이트가 스무 곳 넘게 있다고 보도돼 왔어요(뉴스앤조이). 이제는 AI에게 초안을 통째로 부탁할 수도 있고요. 클릭 몇 번이면 남의 설교 한 편이 내 화면에 와요.
가져오기가 쉬워질수록 밝히는 책임은 더 또렷하게 사람에게 남아요. AI는 두 자리에서 특히 조심해야 해요. 하나는 남의 설교를 매끄럽게 다듬어 '내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자리예요. AI가 문장을 매끈하게 손봐 주면 밝혀야 할 대목이 눈에 덜 띄어요. 그만큼 그냥 지나치기 쉬워지죠. 다른 하나는 AI가 인용과 원어를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자리예요. 이건 표절과는 다른 축의 문제인데, AI가 주해를 지어내는 세 자리에 따로 짚어 뒀어요.
설교 스페이스가 원어와 주석을 지어내지 않고 검증된 출처와 함께 제시하는 이유도 여기 있어요. 강단에서 밝히려면, 먼저 그 근거가 어디서 왔는지가 분명해야 하니까요. 강단에서 나온 말의 책임이 끝까지 사람에게 있다는 이야기는 AI 설교, 어디까지 맡겨도 될까에서 더 다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