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용이 도덕주의가 되지 않으려면
임솔성
설교 마지막에 적용을 붙였는데, 매번 "그러니 우리도 착하게 삽시다", "더 헌신합시다"로 끝나 마음이 걸릴 때가 있어요. 회중도 은근히 알아요. 또 숙제를 받았구나, 하는 표정 말이에요. 그런데 이건 열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순서 때문일 수 있어요. 명령이 은혜보다 앞에 오면, 아무리 성경적인 적용도 도덕주의로 미끄러지거든요. 그 미끄러짐을 알아채고 문제에서 은혜로, 그다음 적용으로 다시 세우는 길을 짚어 볼게요.
적용이 도덕주의로 미끄러지는 자리
도덕주의는 대개 착한 얼굴로 와요. "다윗처럼 담대하라", "이 여인처럼 믿음을 가지라", "더 기도하고 더 사랑하라." 다 맞는 말인데, 회중이 받아 드는 건 결국 "네가 알아서 더 잘해라"라는 요구예요. 설교학자 브라이언 채플은 이런 결말을 '죽은 명령들'이라 부르며 세 가지로 나눴어요.
- ○○처럼 되라(Be Like) — 성경 인물을 본받을 도덕 모델로만 세우기
- 바르게 살라(Be Good) — 옳게 행동해 하나님 앞의 지위를 확보하라는 암시
- 더 애쓰라(Be Disciplined) — 노력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선하라는 주문
세 가지 모두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전제해서, 정작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건너뛰어요. 문제는 이게 특정 교단의 취향이 아니라는 거예요. 보수 침례교 전통의 설교학자 해돈 로빈슨은 "성경 주해보다 적용에서 더 많은 이단이 설교된다"고 했어요. 본문에서 곧장 행동 요구로 건너뛰는 순간 설교가 어긋난다는 경고죠. 성경 인물을 흉내 낼 본보기로만 다루는 '모범적 설교'의 위험은 개혁주의 전통의 시드니 그레이다누스도 오래 지적해 온 문제예요. 서로 다른 진영이 같은 자리를 걱정하는 셈이에요.
문제에서 은혜로 데려간 뒤 적용해요
그럼 어떻게 순서를 바로잡을까요. 캐나다연합교회 전통의 설교학자 폴 스콧 윌슨은 설교를 네 장면으로 짜라고 제안해요. 콜론 뒤로 이어지는 이 순서가 핵심이에요.
- 본문 속 문제 — 본문이 드러내는 곤경·죄·깨어짐
- 우리 세상의 문제 — 그 곤경이 오늘 회중에게 어떻게 나타나는지
- 본문 속 하나님의 행동 — 그 문제 앞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혜)
- 우리 세상 속 하나님의 은혜 — 그 은혜가 오늘 회중에게 닿는 자리
핵심은 설교가 인간의 의무보다 하나님의 행동에 먼저 착지한다는 점이에요. 문제만 두드리고 끝나면 회중을 죄책감에 두고 내려보내고, 문제 없이 은혜만 말하면 값싼 위로가 돼요. 문제에서 은혜로 데려가야 적용이 명령으로 들리지 않고 응답이 돼요. 이건 한 전통의 주장이 아니에요. 미국 가톨릭주교회의의 강론 지침은 강론이 "도덕에 관한 강의가 아니"며 "훈계와 도덕화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못 박고, 루터교의 율법과 복음 전통도 명령을 복음의 선포 위에 세우라고 오래 가르쳐 왔어요. 감리교계·개혁파·가톨릭·루터교가 어휘는 달라도 같은 방향을 가리켜요.
그러니 적용을 붙이기 전에 한 번 멈춰서 물어보세요. 이 대목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회중이 먼저 보았나. 그 은혜를 본 사람에게 명령은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러운 다음 걸음이 돼요. 손에 잡히는 적용을 짜는 실제 방법은 청중이 따라오는 설교의 구조에서 더 풀어 뒀어요.
은혜를 앞세워도 적용은 남아요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짚고 갈게요. "은혜를 강조하면 결국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라는 거냐"는 걱정이에요. 아니에요. 은혜를 앞세운다고 명령이 사라지진 않아요. 오히려 근거가 생겨서 명령이 설 자리를 얻어요. 바울도 로마서 6장에서 우리가 죄에 대해 죽었다는 사실을 먼저 세운 뒤에야, 죄가 더는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살라고 명령해요. 하나님이 하신 일이 먼저고, 우리의 순종은 그 위에서 자라요. 은혜는 적용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떠받쳐요.
반대쪽 함정도 정직하게 봐야 해요. '은혜 중심'을 밀어붙이다 보면, 모든 본문을 똑같은 결론으로 뭉갤 위험이 있어요. 설교학자 에이브러햄 쿠루빌라는 그리스도 중심 설교가 자칫 "모든 본문을 같은 기본 메시지로 환원"해 개별 본문의 고유한 결을 삼킬 수 있다고 지적해요. 한국에서도 신성욱은 구속사적 설교와 모범적 설교를 양자택일로 몰지 말고 균형 있게 쓰자고 제안해요. 사실 모든 본문이 다 구원을 직접 말하는 건 아니라서, 억지로 같은 틀에 끼우면 본문을 문맥에서 뜯어내게 돼요.
그러니 "문제에서 은혜로"는 정답 공식이라기보다 균형추로 쓰는 편이 좋아요. 도덕주의로 기울면 은혜를 앞세워 바로잡고, 본문 뭉개기로 기울면 이 본문만의 결과 정당한 윤리적 부름을 살려서 바로잡는 거예요. 어느 본문을 어떤 각도로 펼지 고르는 단계가 막힌다면 무엇을 설교할지부터 막힐 때가 먼저 도움이 될 거예요.
명령보다 하나님의 행동을 먼저
적용이 도덕주의로 흐르는 건 대개 열심보다 순서의 문제예요. 이 본문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먼저 보여주면, 그다음 명령도 자연스러운 응답으로 들려요. 본문만 정하시면, 본문 속 문제와 은혜를 신뢰받는 주석과 원어로 함께 짚어 가는 게 설교 스페이스가 곁에서 하는 일이에요.
이 글은 공개된 설교학 문헌과 성경 본문(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을 토대로 정리했어요.
참고한 자료
- 문제에서 은혜로 가는 '네 페이지' 구조 — Paul Scott Wilson, The Four Pages of the Sermon (Abingdon, 1999; 개정 2018).
- '타락한 상황의 초점(FCF)'과 '죽은 명령들' 세 유형 — Bryan Chapell, Christ-Centered Preaching (Baker, 2nd ed., 2005).
- '모범적 설교'의 위험 — Sidney Greidanus, Preaching Christ from the Old Testament (Eerdmans, 1999).
- "주해보다 적용에서 더 많은 이단이 설교된다" — Haddon Robinson, "The Heresy of Application," Leadership Journal (1997).
- 강론은 도덕 강의가 아니라는 지침 — USCCB, Fulfilled in Your Hearing: The Homily in the Sunday Assembly (1982).
- 그리스도 중심 설교의 '본문 환원' 위험(균형) — Abraham Kuruvilla, A Vision for Preaching 및 관련 논의.
- 구속사적·모범적 설교의 균형 — 신성욱, 「구속사적 설교의 한계와 대안」, 『ACTS신학저널』 38 (2018); 김재선, 「설교에서 적용 형식의 다양성」, 『한국개혁신학』 50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