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중은 설교의 무엇을 기억할까
임솔성
"이번 주도 자료를 한가득 넣었는데, 정작 회중에게 뭐가 남을까." 설교를 마치고 강단을 내려오며 이 질문이 스치면, 준비가 부족해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너무 많이 담아서일 때가 많아요. 조사와 인지과학, 그리고 오래된 설교학이 입을 모아 가리키는 답은 하나예요. 회중은 설교 한 편에서 '하나'를 남겨요. 그 하나를 정해 두면, 다음 설교에서 무엇을 기억시킬지 기준이 생겨요.
회중은 설교의 대부분을 남기지 않는다
강단에서 쏟은 정보의 양과 회중에게 남는 양은 같지 않아요. 미국 남침례교 계열 리서치 기관인 LifeWay Research는 회중 상당수가 바로 전 주 설교의 요점조차 이미 잊은 채 다음 예배에 온다고 짚어요. 한국 강단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설교 말씀은 기억 못 하고 예화만 기억난다"는 말은 목회 현장에서 익숙한 고백이에요(크리스천투데이). 본문 해설과 논증은 흐려지고, 이야기 한 토막이 남는 거죠. 그렇다면 남은 자리를 정보로 더 채울지, 기억될 하나로 좁힐지가 갈수록 중요해져요.
기억은 하나로 꿰일 때 저장된다
회중은 왜 들은 것 대부분을 흘려보내고 하나만 남길까요. 인지과학이 그 과정을 설명해 줘요. 들은 말은 아주 잠깐 머물다 작업기억(지금 이 순간 붙들고 처리하는 짧은 기억)으로 넘어가요. 여기서 오래 남으려면 한 단계가 더 필요해요. 작업기억이 장기기억(오래 저장되는 기억) 속 기존 경험을 불러내, 새로 들은 말과 이어 붙여야 해요. 기존의 앎이나 이야기에 걸리지 않은 정보는 장기기억까지 가지 못하고 흩어져요(정우홍, 「인지 과학을 통한 장기기억에 남는 설교 연구」, 2018).
이 원리가 설교에 주는 함의는 분명해요. 서로 걸리지 않는 정보를 나란히 늘어놓으면, 회중의 기억에는 걸 곳이 없어요. 반대로 하나의 중심 생각으로 꿰고 그것을 이야기와 장면에 실으면, 회중은 걸어 둘 고리를 얻어요. 커뮤니케이션 연구를 종합한 낸시 두아르테도 이야기 형태의 전달이 정보 나열보다 더 여러 감각과 감정을 함께 깨워 오래 남는다고 정리해요. 예화가 유독 기억에 남는 것도 같은 이유예요. 예화 자체가 회중이 걸어 둘 고리가 돼 주니까요. 예화를 정직하고 정확하게 다루는 법은 설교, 예화를 어떻게 쓸까에 따로 정리해 뒀어요.
설교학은 오래전부터 '하나'를 말했다
기억되는 설교가 하나로 꿰인다는 결론은 새로 나온 트렌드가 아니에요. 이미 오래전 설교학이 같은 자리를 짚었어요. 1958년 그래디 데이비스는 가장 좋은 설교는 하나의 생성적 아이디어가 몸을 입은 것이며, 이건 규칙이라기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한 것이라고 적었어요. 1980년대 이후 설교학의 고전이 된 해돈 로빈슨은 이를 한 문장으로 압축했고요. 설교는 산탄총이 아니라 총알이어야 한다고요. 여러 대지를 흩뿌리는 대신, 하나의 지배적인 생각이 설교 전체를 관통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수십 년 전 설교학이 원리로 세운 것을, 오늘의 인지과학과 조사가 뒤에서 받쳐 주는 셈이에요. 그 하나를 어떻게 잡고 서론부터 결론까지 꿰는지, 실제 짜는 법은 잘 들리는 설교의 구조에서 단계별로 다뤘어요. 여기서는 그 구조가 왜 기억의 조건인지까지만 짚을게요.
검증된 토대 위에서 한 문장을 잡는다
한 문장으로 꿰는 게 힘을 가지려면 조건이 하나 있어요. 그 문장이 딛고 선 근거가 사실이어야 해요. 우리가 한국 강단 설교 16편을 문장 단위로 분석했을 때, 잘 들리는 설교의 한 문장은 짧고 또렷했어요(자세한 수치는 구조 글에 정리해 뒀어요). 그런데 그 또렷한 한 문장이 지어낸 원어나 출처 없는 인용 위에 서 있다면, 회중에게 잘못된 하나를 또렷하게 남기는 셈이 돼요.
그래서 무엇을 남길지를 정하는 일과, 그 근거가 사실인지 확인하는 일은 함께 가야 해요. 설교 스페이스가 원어와 주석을 지어내지 않고 검증된 토대 위에서만 돕는 이유도 여기 있어요. AI가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자리를 구체적으로 짚은 글은 AI가 주해를 지어내는 세 자리에 따로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