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시·편지, 설교 구조가 달라져요

설교 스페이스

"이 본문도 또 세 대지로 나눠 볼까." 준비가 급할수록 손에 익은 틀부터 꺼내게 돼요. 3대지는 편하고 안정적이에요. 그런데 이야기 본문을 억지로 세 대지로 쪼개면 장면이 흩어지고, 시편을 조목조목 설명으로 풀면 시의 감정이 눌려요. 틀이 틀려서가 아니라 본문 장르에 안 맞아서예요. 이야기·시·편지는 서로 다른 문학 형식이라, 잘 맞는 설교 구조도 달라요. 장르가 형식을 고르게 하는 법을 하나씩 짚어 볼게요.

형식이 곧 의미를 담아요

성경은 한 가지 문법으로 쓰이지 않았어요. 이야기가 있고, 시가 있고, 논증하는 편지가 있고, 잠언 같은 지혜의 말도 있어요. 설교학자 토머스 롱은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가만이 아니라 '어떻게' 말하는가, 그 문학 형식까지 설교의 모양을 정해야 한다고 봤어요. 형식 자체가 의미의 일부를 나른다는 거예요. 장르가 다르면 설교 개요도 달라지는 게 자연스러워요. 시편을 비유처럼, 비유를 논문처럼 설교하면 본문이 담고 있던 결을 놓치거든요.

오해는 말아요. 3대지가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정장복 교수는 설교의 전개 형태가 대지 설교부터 서사체·대화체까지 여러 갈래라고 정리하면서, 본문에 따라 다른 형태가 더 잘 맞을 수 있다고 제안했어요. 3대지는 그 가운데 오래 검증된 기본기예요. 다만 그 틀 하나로 모든 본문을 눌러 짜는 습관이 문제예요. 손에 잡히는 설교 구조의 기본은 청중이 따라오는 설교의 구조에서 정리해 뒀고, 이 글은 거기서 한 줄로만 짚었던 '장르가 형식을 고르게 하라'를 펼쳐 볼게요.

이야기 본문은 장면과 플롯으로 짜요

복음서의 사건이나 구약의 서사는 이야기예요. 이야기는 긴장으로 굴러가요. 문제가 생기고, 꼬이고, 풀려요. 이 흐름을 명제 세 개로 잘게 쪼개 놓으면, 정작 이야기를 이야기이게 하던 긴장이 사라져요. 줄거리를 요약해 교훈만 뽑아내면 청중은 사건을 함께 겪지 못하고 결론만 받아 들어요.

유진 라우리는 설교를 시간 속에서 풀려 가는 하나의 플롯으로 봤어요. 평형이 깨지고, 갈등이 깊어지고, 실마리가 열리고, 복음이 드러나고, 그 결과를 내다보는 흐름이에요. 결론을 앞에 못 박는 대신 청중과 함께 걸어가 마지막에 발견하게 하는 방식이죠. 라우리와 귀납적 전개는 설교 구조 글에서 더 풀어 뒀어요.

실무에서는 하나만 바꿔도 달라져요. 절 단위로 토막 내지 말고 장면 단위로 묶으세요. 한 장면에서 인물이 무엇을 맞닥뜨렸고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 긴장을 청중이 따라오게 두는 거예요. 교훈은 이야기가 다 지나간 뒤에 얹어도 늦지 않아요.

시가·시편은 이미지와 평행법으로 살려요

시편은 감정과 그림의 언어예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시 23:1)는 목양에 관한 명제이기 전에 한 폭의 그림이에요. 이 그림을 곧장 교리 명제로 갈아 끼우면 시가 마르게 돼요. 시는 논증으로 설득하기보다 생생한 이미지로 마음을 움직이거든요.

히브리 시의 뼈대는 평행법이에요. 같은 생각을 조금 다른 각도로 두 번 말하거나, 반대편을 붙여 대비시키는 방식이에요. 운율보다 '생각의 운율'에 가까워요. 그래서 시편의 두 줄을 서로 다른 두 대지로 나누면, 한 생각을 강조하려던 반복을 억지로 갈라 놓는 셈이 돼요.

실무 팁은 이미지 안에 머무는 거예요. 본문의 그림을 설명으로 서둘러 바꾸지 말고, 그 장면을 청중이 오래 바라보게 두세요. 목자와 양처럼 이미지 하나를 설교 전체가 품고 가면, 시가 원래 하려던 일을 설교가 이어서 해요.

서신은 논증의 흐름을 따라가요

3대지가 제일 잘 맞는 자리는 어디일까요. 바로 서신이에요. 바울의 편지는 처음부터 논증문이에요. 주장을 세우고, 근거를 대고, '그러므로'로 결론을 끌어내요. 로마서를 읽다 보면 이 '그러므로'가 반복되며 사실상 설교 순서를 정해 줘요.

서신은 저자의 논리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는 게 자연스러워요. 문단마다 저자가 밀고 가려는 핵심 생각이 있고, 그 생각들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짚어 대지로 세우면 돼요. 여기서는 명제를 또렷이 앞세우는 연역적 전개가 오히려 청중을 덜 헤매게 해요. 논증이 촘촘한 본문일수록 그래요. 로마서 전체가 어떻게 논증으로 이어지는지는 로마서 한눈에에서 흐름 지도로 정리해 뒀어요.

장르부터 확인하고 틀을 고르세요

준비 순서를 한 칸 앞당기면 좋아요. 본문을 펴자마자 대지부터 나누기 전에, 먼저 물어보세요. 이 본문은 무슨 장르인가. 이야기인지, 시인지, 논증하는 편지인지. 장르를 확인하고 나서 거기에 맞는 형식을 고르면, 본문이 원래 하려던 말을 설교가 가로막지 않아요. 어떤 본문을 고를지부터 막힌다면 무엇을 설교할지부터 막힐 때가 먼저 도움이 될 거예요.

본문이 고르게 두면 돼요

구조를 미리 정해 놓고 본문을 끼워 맞추는 대신, 본문 장르가 형식을 고르게 두세요. 본문만 정하면 그 장르에 맞는 구조까지 함께 짚어 가는 게 설교 스페이스가 곁에서 하는 일이에요.


이 글은 공개된 설교학 문헌과 성경 본문(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을 토대로 정리했어요.

참고한 자료

  • 형식이 의미를 담는다 — Thomas G. Long, Preaching and the Literary Forms of the Bible (Fortress Press, 1989).
  • 플롯으로서의 설교 — Eugene L. Lowry, The Homiletical Plot: The Sermon as Narrative Art Form (증보판, Westminster John Knox, 2001).
  • 귀납적 설교 — Fred B. Craddock, As One Without Authority (1971; Chalice Press 재간).
  • 시편·시가 설교와 평행법 — Christianity Today(CT Pastors), "Preaching on Psalms".
  • 설교 전개 형태의 다양성 — 정장복, 설교학 강의(아이굿뉴스 '설교학교' 연재 소개).
  • 한국의 내러티브 설교 적용 — 권호, 『보이는 내러티브 설교법』(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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