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일곱 표적, 시리즈 설계도

임솔성

"이번엔 요한복음을 시리즈로 펴 보자." 마음먹고 나면 스물한 장을 앞에 두고 어디서 끊어야 할지부터 막막해져요. 그런데 요한복음은 설교자를 위해 마디를 미리 찍어 뒀어요. 바로 '표적'이에요. 이 표적들을 따라가면 한 학기 시리즈의 지도가 자연스럽게 그려져요.

어디까지가 표적의 책인가

요한복음은 크게 두 덩이로 읽어요. 레이먼드 브라운은 앞부분(1-12장)을 '표적의 책', 뒷부분(13-21장)을 '영광의 책'이라 불렀어요. 표적의 책은 예수가 사람들 앞에서 표적을 행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대목이고, 영광의 책은 제자들과의 마지막 밤부터 십자가와 부활로 이어지는 대목이에요. ('표적의 책'이라는 이름은 앞서 C. H. 도드가 먼저 썼고, 브라운이 '영광의 책'과 짝지어 굳혔어요.)

요한은 이 표적들을 왜 골라 적었는지도 밝혀 둬요. 20장 끝(30~31절)에서, 예수께서 하신 다른 표적도 많지만 이것들을 기록한 건 "예수가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믿어 그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못 박거든요. 표적에서 믿음으로, 믿음에서 생명으로. 이 한 문장이 시리즈 전체의 '왜'가 돼요.

첫 시리즈라면 범위를 표적의 책(1~12장)으로 잡는 게 안전해요. 한 덩이로 묶이고, 목적도 뚜렷하거든요.

전통적으로 꼽는 일곱 표적

표적의 책 안에서 흔히 꼽는 일곱은 이래요.

  • 물로 포도주 (요 2:1-11, 가나의 혼인 잔치)
  •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요 4:46-54)
  •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 (요 5:1-15)
  • 오천 명을 먹이심 (요 6:1-14)
  • 물 위를 걸으심 (요 6:16-21)
  •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치심 (요 9:1-7)
  • 나사로를 살리심 (요 11:1-44)

여기서 한 가지는 미리 알아두면 좋아요. 요한복음은 "표적이 일곱"이라고 직접 세지 않아요. '일곱'은 후대 학자들이 정리한 셈이라, 목록이 조금씩 갈려요. 안드레아스 쾨스텐베르거는 여섯까지는 이견이 적지만 일곱째에서 합의가 흩어진다고 봐요. 물 위를 걸으신 일은 본문이 '표적'이라고 부르지 않아 목록에서 빼기도 하고요. 그러면 십자가와 부활을 절정의 표적으로 세거나, 성전을 정화하신 일(요 2장)을 넣는 견해도 있어요(브랜던 크로우). '전통적인 일곱'을 뼈대로 삼되, 시리즈 범위는 회중과 학기에 맞춰 유연하게 조절하면 돼요.

표적은 보여주고, 나는 이다는 말해줘요

요한복음의 묘미는 표적과 말씀이 짝을 이룬다는 데 있어요. 표적이 예수가 누구신지 '행동'으로 보여주면, '나는 ~이다'(에고 에이미) 선언이 그 행동을 '말'로 풀어줘요. 두 개가 만나는 자리가 세 곳 있는데, 시리즈를 짤 때 특히 쓸모 있어요.

  • 오천 명을 먹이심(6장) 다음에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 6:35)가 이어져요.
  • 맹인을 고치심(9장) 곁에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 8:12; 9:5)가 놓여요.
  • 나사로를 살리심(11장) 직전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 11:25)가 선포돼요.

'나는 ~이다'는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밝히신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라, 이 선언들엔 무게가 실려요. 다만 표적 일곱과 선언 일곱을 일대일로 다 맞추려는 건 무리예요. 깔끔하게 맞물리는 건 위 세 쌍이고, 나머지 표적은 짝이 없어요. 억지로 도표를 채우기보다, 맞물리는 세 곳을 시리즈의 중심으로 삼는 편이 정직하고 힘도 있어요.

한 학기 시리즈로 배치하기

이제 지도를 그려볼게요. 한 학기를 열두어 주로 본다면, 표적을 이렇게 얹을 수 있어요. 정답은 아니고 하나의 틀이니, 교회 일정에 맞게 바꿔 쓰세요.

  • 표적과 선언이 맞물리는 주: 6장·9장·11장은 표적과 '나는 ~이다'를 한 주로 묶어요. 앞주에 표적을 보여주고 이어 선언으로 해석하면 두 주로 나눌 수도 있고요.
  • 짝이 없는 표적: 물로 포도주, 신하의 아들, 베데스다는 각각 한 편으로 세워요. 표적 자체가 드러내는 예수의 한 면(영광의 시작, 말씀의 능력, 안식일의 주인)에 집중하면 돼요.
  • 여는 주와 닫는 주: 첫 주는 표적의 책이 왜 '표적'인지(20:30-31의 목적)를 미리 걸어 두는 서론으로, 마지막 주는 나사로 사건에서 부활 직전까지 이어 영광의 책으로 넘겨줘요.

한 책을 숲으로 먼저 보고 한 주씩 나누는 방식은 로마서 한눈에 보기에서도 같은 결로 다뤘어요. 로마서가 하나의 긴 논증이라면, 요한복음은 표적이라는 여러 장면으로 같은 한 분을 보여준다는 점이 달라요.

표적마다 같은 질문으로 닫아요

시리즈가 흩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건 20장 31절의 목적이에요. 표적 하나하나는 다른 장면을 보여주지만, 향하는 곳은 같아요. "이 표적 앞에서 당신은 예수를 누구라 믿나요." 매 편을 이 질문으로 닫으면, 일곱 편이 제각각이면서도 한 방향을 가리켜요.

요한복음에서 표적은 구경거리가 아니에요. 크레이그 케스터의 말처럼, 표적은 보는 이를 믿음과 불신으로 갈라놓는 자리예요. 그래서 설교도 정보 전달로 끝나지 않고 결단 앞에 세워야 힘이 살아요. 한 표적을 한 편의 설교로 어떻게 짤지는 청중이 따라오는 설교의 구조에서 더 다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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