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다섯 권, 탄식에서 찬양으로
설교 스페이스
"이번엔 시편으로 설교해 보자." 마음먹고 나면 150편이라는 숫자 앞에서 먼저 막막해져요.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끊어야 할지, 도무지 마디가 안 보이거든요. 그런데 시편에는 미리 찍혀 있는 마디가 있어요. 150편은 다섯 권으로 묶이고, 앞에서 뒤로 가며 탄식이 찬양으로 옮겨 가도록 놓여 있어요. 그 지도를 먼저 펴 두면, 성도들이 지금 어떤 감정에 있든 닿는 본문이 보여요.
시편은 다섯 권으로 묶여요
시편을 펼 때 가장 먼저 알아 두면 좋은 건, 150편이 다섯 권으로 나뉜다는 점이에요. 제1권(1~41편), 제2권(42~72편), 제3권(73~89편), 제4권(90~106편), 제5권(107~150편). 이 구분은 어느 번역본이든 시편 각 권 앞에 '제1권' 식으로 표시돼 있어요.
경계를 어떻게 아느냐면, 각 권이 송영(하나님을 찬양하며 마무리하는 짧은 문구)으로 닫혀요. 41편 끝, 72편 끝, 89편 끝, 106편 끝에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류의 마침 문구가 놓이고, 마지막 146~150편은 다섯 편이 통째로 시편 전체를 닫는 송영 역할을 해요. 이 다섯 권 구분은 히브리 성경 전통과 70인역, 쿰란 사본까지 함께 반영하는 오래된 구조라, 교단을 가리지 않고 이견이 적어요.
왜 하필 다섯 권일까요. 유대 전통은 이걸 모세오경과 짝지어 읽었어요. 미드라시 테힐림에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다섯 권(율법)을 주었듯, 다윗은 이스라엘에게 다섯 권(시편)을 주었다"는 말이 있거든요. 다만 이건 성경 본문이 스스로 밝힌 설명이라기보다 후대 유대 전통의 읽기예요. 흥미로운 실마리로 걸어 두되, 확정된 이유로 못 박지는 않는 게 좋아요.
앞은 탄식, 뒤는 찬양
다섯 권을 통째로 놓고 멀리서 보면 한 가지 결이 보여요. 앞쪽에는 탄식이 많아요. "어느 때까지니이까",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하나님께 따지고 부르짖는 시들이 앞 권들에 몰려 있어요. 그러다 뒤로 갈수록 찬양이 늘고, 마지막 146~150편에 이르면 매 편이 "할렐루야(여호와를 찬양하라)"로 열고 닫아요.
시편 전체가 1편으로 열리고 150편으로 닫히는 것도 같은 결이에요. 1편은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사람의 복으로 시작하고, 150편은 호흡이 있는 모든 것에게 찬양을 부르며 끝나요. 묵상에서 찬양으로 이어지는 큰 아치인 셈이죠.
실제로 시편에서 가장 많은 유형은 찬양시가 아니라 탄식시예요(헤르만 궁켈이 정리한 장르 분류에서요). 성경이 슬픔과 항변의 언어를 이렇게 많이, 이렇게 앞자리에 놓아 뒀다는 건 설교자에게 큰 위로예요. 성도들의 눈물을 건너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니까요. 다만 이 흐름은 '관찰되는 결'이지 수학처럼 증명된 설계는 아니에요. 개별 시편은 이 큰 흐름과 다르게 놓인 경우도 있어요.
왜 이 순서일까 — 하나의 읽기
그럼 이 배열이 의도된 편집일까요, 아니면 오랜 세월 모이다 보니 그렇게 된 걸까요. 여기서부터는 학자마다 갈려요.
한쪽에는 배열을 의도된 편집으로 보는 읽기가 있어요. 제럴드 윌슨은 시편의 순서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봤어요. 제3권 끝 89편에서 다윗 왕조가 무너진 것 같은 위기가 절정에 이르고, 이어지는 제4권(90~106편)이 초점을 다윗의 왕권에서 '여호와가 왕이시다'로 옮겨 그 위기에 답한다는 거예요. 매력적인 읽기라 국내에도 이 결의 연구가 있어요.
다른 쪽에서는 이런 큰 설계에 신중해요. R. N. 윕레이 같은 학자는 시편 전체에 걸친 체계적 재편집의 증거는 뚜렷하지 않다고 봤어요. 그러니 강단에서는 "89편의 위기에 4권이 응답한다"를 확정된 해석처럼 선포하기보다, "이렇게 읽는 학자들이 있다"로 소개하는 편이 안전해요. 여러 교단의 성도들 앞에서는 특히요.
성도들의 감정 어디든 닿는 본문
지도를 폈으니 이제 실무예요. 시편의 강점은 성도들이 어떤 감정에 있든 그 자리에 맞는 언어가 이미 있다는 데 있어요. 시편을 장르로 나눠 보면 본문 고르기가 한결 쉬워져요.
- 탄식시: 잃음·질병·불의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시(개인·공동체 모두). 시편에서 가장 많아요.
- 감사시: 건짐받은 뒤 돌아보며 감사하는 시.
- 찬양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 자체를 노래하는 시.
- 제왕시: 왕(그리고 그 너머 하나님의 다스림)을 노래하는 시.
- 지혜시: 사는 법과 두 길을 가르치는 시(1편이 그 문을 열어요).
월터 브루그만은 이걸 목회적으로 다시 묶어 방향설정·방향상실·새방향으로 읽기도 했어요. 삶이 질서 있게 느껴질 때의 노래, 그 질서가 깨졌을 때의 탄식, 그리고 그 어둠을 통과한 뒤 예전과는 다른 자리에서 부르는 새 노래로요. 널리 쓰이는 목회적 독법이라 성도들의 상태를 가늠할 때 참고할 만해요. 특히 교회가 힘든 계절을 지날 때, 탄식시를 건너뛰고 찬양시만 고르지 않도록 지켜 줘요.
한 시리즈로 탄식에서 찬양까지
시편을 시리즈로 편다면, 몇 가지 틀이 있어요. 정답은 아니고 교회 상황에 맞춰 고르면 돼요.
- 한 권을 통과하기: 한 권(예: 제4권 90~106편)을 골라 그 안을 차례로 걸어요. 분량이 알맞고 한 덩이로 묶여 있어요.
- 장르로 한 바퀴: 탄식 → 감사 → 찬양 순으로 대표 시편을 골라, 시편 전체의 흐름을 축소판으로 걸어요. 성도들이 탄식에서 찬양으로 옮겨 가는 여정을 함께 지나요.
- 절기·상황에 맞추기: 사순절엔 탄식시, 감사 절기엔 감사시처럼 교회력이나 공동체 상황에 본문을 맞춰요.
한 책을 숲으로 먼저 보고 한 편씩 나누는 방식은 로마서 한눈에 보기와 요한복음 일곱 표적에서도 같은 결로 다뤘어요. 로마서가 하나의 긴 논증, 요한복음이 표적이라는 장면들이라면, 시편은 성도들의 감정을 순서대로 놓아둔 지도라는 점이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