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입에 남는 한 문장 만들기
설교 스페이스
"정리는 다 됐는데, 강단에서 성도 입에 남을 한마디로는 안 떨어지네." 빅 아이디어(설교 전체를 꿰는 하나의 중심 생각)를 잡고도 여기서 멈추는 경우가 많아요. 생각은 또렷한데, 그 생각을 성도의 입에 남을 문장으로 옮기는 데서 막히는 거예요. 이 글은 그 마지막 한 칸을 다뤄요. 잡은 생각을 성도가 따라 말할 수 있는 한 문장으로 옮기는 손질 다섯 가지예요.
찾은 생각과 옮긴 문장은 다른 작업이에요
빅 아이디어를 어떻게 찾고 서론부터 결론까지 어떻게 꿰는지는 청중이 따라오는 설교의 구조에서 단계별로 정리해 뒀어요. 성도들이 왜 설교 한 편에서 하나만 남기는지는 성도들은 설교의 무엇을 기억할까에서 다뤘고요. 여기서는 그 하나를 이미 잡았다고 치고, 다음 칸을 봐요.
찾는 일과 옮기는 일은 같은 작업이 아니에요. 주해를 마치고 손에 쥔 문장은 대개 서재의 언어로 정리돼 있어요. 정확하지만, 그대로 강단에 올리면 성도의 귀를 스쳐 지나가요. 앤디 스탠리는 중심 생각을 찾은 다음에 "달라붙는 한 문장"을 따로 만들라고 했어요. 그 문장이 메시지를 붙드는 앵커가 되고,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이 된다고요. 여기서 중요한 건 '따로'예요. 옮긴 문장은 주해를 잘한다고 저절로 나오지 않아요. 손으로 따로 다듬는 설계 단계죠.
문장으로 성립하는지부터 봐요
첫 손질은 그게 문장인지부터 확인하는 거예요. '은혜', '회복', '순종' 같은 주제어를 한 문장이라고 착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주제어는 방향만 가리킬 뿐, 무엇을 말하는지는 아직 비어 있어요.
해돈 로빈슨은 설교의 중심 생각을 한 주어와 한 보어를 갖춘 완결 문장으로 적으라고 했어요. 주어가 있고, 그 주어를 두고 무언가 확정해서 말하는 문장이요. '은혜'는 주제어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돌아서기 전에 먼저 와 있었어요"는 문장이에요. 주어(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그것이 무엇을 했는지(먼저 와 있었다)가 담겼으니까요.
토머스 롱은 여기에 간단한 잣대를 더해요.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없다면 아직 한 편의 설교로 좁혀지지 않은 거예요. 롱은 그걸 사실상 여러 편을 뭉쳐 둔 시리즈라고 불렀고요. 한 호흡에 말이 되는지 소리 내 확인해 보세요. 두 문장, 세 문장으로 자꾸 늘어난다면 아직 하나로 안 모인 거예요.
서재의 말이 아니라 성도의 말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손질이 여기예요. 서재에서 정리한 문장에는 신학교에서 배운 말이 그대로 남아 있기 쉬워요. 칭의, 전가, 성화 같은 단어요. 뜻은 정확하지만, 그 말을 처음 듣는 성도에게는 걸어 둘 고리가 없어요.
한국성결신문의 설교 준비 연재는 개요를 회중이 쉽게 이해하고 기억하도록 표현하려면 종교적 언어를 피하고 단순화하라고 조언해요. 크리스천투데이가 소개한 한 설교자는 대지를 남녀노소 누구든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풀었고요. 쉬운 말이라고 내용이 얕아지는 건 아니에요. 알아듣는 사람의 범위가 넓어지는 거죠.
방향은 추상에서 구체로예요. 칩 히스와 댄 히스는 잘 기억되는 메시지의 공통점으로 구체성을 꼽았어요. 손에 잡히는 말이 개념어보다 오래 남는다는 거죠. 예를 들어 "우리의 구원은 오직 은혜에 근거한다"는 정확하지만 개념적이에요. 이걸 "하나님은 우리가 자격을 갖추기 전에 먼저 손 내미셨어요"로 옮기면, 같은 뜻이 손에 잡히는 장면이 돼요.
어떤 말이 쉬운 말인지는 회중마다 달라요. 오현철 교수는 설교자가 회중을 정확히 이해할 때 그 필요를 채우는 설교가 나온다고 했어요. 시골 어르신 회중과 도시 청년 회중이 매일 쓰는 말이 다르니, 옮길 문장의 어휘도 그 자리에 맞춰 고르는 게 먼저예요.
귀로 들리게 써요
설교문은 눈으로 읽는 글보다 귀로 듣는 말에 가까워요. 박교수의 개혁주의 설교학 연재는 설교문을 소리 내어 말하기 위한 글로 보고 구어체로 쓰라고 권해요. 청중이 속으로 던질 법한 질문에 답하듯 대화체로 써 보라고도 하고요.
그래서 옮긴 문장은 눈으로 읽지 말고 입과 귀로 점검해요. 소리 내 읽었을 때 옆 사람에게 말하듯 자연스러운지 들어 보는 거예요. 글로는 멋있는데 입에 붙지 않는 문장이 있어요. 대개 너무 길거나, 꾸민 표현이 끼어 있어서예요. 짧게 끊고, 옆 사람에게 설명하듯 고치면 귀에 들어와요.
문장은 긍정형으로 세우면 더 잘 남아요. 무엇을 하지 말라는 말보다 무엇이 참인지 말하는 문장이 귀에 오래 남거든요. 최근 설교 언어를 다룬 한 학술 연구도 간결함과 명료함, 그리고 긍정적이고 명제적인 표현을 오늘의 설교가 갖출 조건으로 꼽았어요.
그 한 문장을 설교 내내 반복해요
마지막 손질은 반복이에요. 애써 옮긴 문장을 서론에서 한 번 말하고 흘려보내면 남지 않아요. 스탠리가 앵커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 있어요. 그 문장을 서론에서 던지고, 본문을 풀며 다시 박고, 결론에서 한 번 더 새기는 거예요.
이때 매번 다른 말로 바꾸지 않는 게 중요해요. 같은 뜻을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면 성도의 기억에는 흐릿한 여러 조각만 남아요. 정한 그 한 문장을 같은 말로 되박아야, 예배가 끝나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성도의 입에 그 한마디가 따라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