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좋아' 챌린지, 먼저 사랑하심을 어떻게 설교할까

설교 스페이스

니가 좋아 챌린지 (오정세 '와일드 씽')

이 글이 출발한 요즘 트렌드예요

2026년 6월 개봉 영화 〈와일드 씽〉에서 배우 오정세가 연기한 발라드 가수 '최성곤'의 극중 솔로곡 '니가 좋아'.

카메라를 응시하는 느끼한 눈빛 연기와 단순한 후렴·안무가 립싱크 패러디 챌린지로 번져, 류승룡을 시작으로 이성민·김무열 등 배우와 에스파 윈터·몬스타엑스 기현 등 아이돌까지 릴레이로 참여하며 바이럴.

출처: 경향신문·데일리엔터

2026년 6월 개봉한 영화 〈와일드 씽〉에는 배우 오정세가 연기한 발라드 가수 '최성곤'의 솔로곡 '니가 좋아'가 나와요.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는 느끼한 눈빛 연기와 단순한 후렴, 안무가 립싱크 패러디로 번졌어요. 류승룡을 시작으로 이성민, 김무열 같은 배우들과 에스파 윈터, 몬스타엑스 기현 같은 아이돌까지 릴레이로 이어졌죠.

표면 아래를 보면

이 챌린지의 핵심은 가사가 아니라 눈빛이에요. 카메라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보면서 '니가 좋아'라고 말하는 그 몇 초를, 사람들은 웃음과 함께 견뎌요. 웃는 이유는 낯 뜨겁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낯 뜨거운데도 다들 한 번씩 해 보는 이유가 있어요.

조건 없이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문장은, 지금 이 세대에게 진심으로 하기 가장 어려운 문장 중 하나예요. 좋아할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그 이유는 대체로 성과나 조건에서 나오죠. 그래서 이유 없는 호감은 농담이라는 알리바이를 통과할 때만 유통돼요. 밈의 형식을 입혀야 겨우 주고받을 수 있는 말인 셈이에요. 챌린지가 이렇게 오래 굴러가는 건 그 문장을 실제로 듣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해요. 누군가 나에게 조건을 따지지 않고 먼저 그렇게 말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웃음 뒤에 있어요.

그래서, 설교로 푼다면

방향 하나. 순서가 이미 있었어요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1서 4:19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챌린지에서는 내가 카메라를 보고 먼저 말해요. 이 구절은 순서가 반대예요. 먼저 말한 쪽이 하나님이고, 우리 사랑은 그 응답이라는 거죠. 좋아할 이유를 만들어 내야 하는 부담이 여기서 한 번 내려앉아요.

⚠️ 함정. 가벼운 유행을 억지로 진지하게 눌러 재미를 죽이지 않게 해요. 같이 웃어 준 다음 한 칸만 더 들어가면 충분해요.

방향 둘. 그 사랑 안에 머무는 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한복음 15:9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여기서 사랑은 한 번 전한 고백이 아니라 머무는 자리예요. 거하라는 명령이 붙어 있으니까요. 챌린지는 며칠 만에 다음 유행으로 넘어가지만 거하라는 말은 시간을 달라고 해요. 짧게 끝나는 표현과 오래 머무는 관계의 차이를 여기서 짚어 볼 수 있어요.

⚠️ 함정. 하나님의 사랑을 기분 좋은 감정으로만 얕게 다루지 않게 해요. 이 사랑은 뒤에 오는 계명과 십자가까지 이어지는 사랑이에요.

방향 셋.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분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17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즐거이 부르며'라는 표현이 그대로 노래예요. 하나님이 우리 때문에 노래하신다는 이미지가 챌린지와 바로 맞닿아요. 다만 이 노래를 부르는 분이 누구인지가 이 구절의 무게예요. 바로 앞에 '잠잠히 사랑하시며'가 놓여 있는 것도 같이 읽어 주면 좋아요. 요란하게 반복되는 챌린지와는 결이 다른 사랑이 여기 있어요.

⚠️ 함정. 기뻐하심을 감정 이야기로만 끝내지 않게 해요. 이 기쁨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라는 선언과 붙어 있어요.

이 챌린지도 곧 다른 노래로 넘어갈 거예요. 그래도 남는 건 그 몇 초를 웃음 없이는 못 견디는 마음이에요. 강단은 웃음 없이 그 말을 들려줄 수 있는 자리예요.


🤖 아래는 '설교 스페이스'가 이 방향으로 뽑은 AI 초안이에요. 검증된 주해와 본문 위에서 생성했지만, 강단에 서기 전 목회자의 손질을 전제한 초안입니다. 그대로 읽는 원고가 아니라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는 출발점이에요. 당신의 본문·부서·문체에 맞춘 원고는 설교 스페이스에서 만들 수 있어요.

[AI 초안 예시] 청소년부 설교 · 요한1서 4:19

먼저 한 '니가 좋아'

서론

여러분, 요즘 SNS에서 '니가 좋아 챌린지' 본 적 있죠? 오정세 배우가 영화에서 부른 그 노래, '니가 좋아'요. 눈빛 장난치며 가볍게 립싱크를 맞추는 영상들, 정말 재미있어요. 아이돌도 하고, 배우들도 하고,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도 한 번쯤 따라 해 봤을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니가 좋아'라는 말은 유행이 지나면 금방 사라져요. 다음 달이면 또 다른 챌린지가 뜨고, 사람들은 그 노래를 잊어버리죠. 마치 그때그때 스쳐 가는 감정처럼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1서 4장 19절은 완전히 다른 '좋아'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말이에요. 여기서 '먼저'라는 말이 중요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네는 '니가 좋아'는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이미 시작된 거예요. 유행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있었고, 우리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계속될 거예요. 우리는 보통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예쁘니까, 착하니까, 나에게 잘해 주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하지 않을 때, 실수할 때, 때로는 밉살스러울 때조차 먼저 좋아하셨어요. 성적이 곤두박질치거나 관계가 틀어져 마음이 닫히는 날에도 하나님의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찰나의 유행과 달리 이 사랑은 결코 낡지 않습니다. 그저 이 사실을 숨 쉬듯 들이마셔 보세요. 하나님이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먼저 택하셨다는 그 고백 말입니다.

1. 유행처럼 스치는 '좋아' 말고, 진짜 고백은 어디서 시작될까

요한은 '우리가 사랑함은'이라고 말하며 우리의 사랑을 먼저 꺼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친구를 챙기고 싶은 마음,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 그게 다 여러분 안에서 저절로 생겨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요한은 그 마음의 출발점을 거꾸로 추적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이라고 말하던 문장을 곧바로 이렇게 돌려 놓습니다.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좋아해'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그 마음이 언제 처음 생겼는지 기억나나요? 아마 '어느 순간부터 그랬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거예요. 그런데 요한은 그 '어느 순간'보다 더 앞선 순간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 첫 발은 하나님이 먼저 내딛으셨다는 거예요. 마치 누군가가 먼저 다가와서 '니가 좋아' 하고 손을 내밀었는데, 우리가 그 손을 잡은 것뿐인 겁니다. 사랑은 우리가 시작한 게 아니에요. 우리는 그 사랑에 반응한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 안에 있는 '좋아하는 마음' — 그게 친구에 대한 관심이든, 선생님에 대한 존경이든, 아니면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든 — 그 마음이 어디서 왔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혹시 그 마음도, 먼저 나를 좋아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에서 시작된 건 아닐까요? 여러분이 먼저 시작했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좋은 마음이, 사실은 하나님이 먼저 건네신 사랑을 따라 간 것이라면? 그러면 우리의 사랑은 더 이상 내가 만든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흐르고 있는 증거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반대로 생각합니다. '내가 먼저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으니까, 내가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하고 말이죠. 마치 우리가 사랑의 주체인 것처럼 착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요한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이 말을 거꾸로 읽어 보면 더 선명해집니다. 만약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영원히 사랑이라는 걸 몰랐을 거라는 뜻이에요. 마치 태양이 먼저 빛을 내지 않으면 눈을 뜨고 있어도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빛을 켠 적이 없어요. 다만 그 빛을 받아서 본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우리에게 꽤 당황스러운 고백을 요구합니다. '내 사랑은 사실 내 것이 아니었다'는 고백 말입니다. 내가 가족을 챙기고,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그 모든 마음이 사실은 하나님이 먼저 내 안에 심어 주신 씨앗에서 자라난 거라면? 그러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사랑해서' 잘했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그 사랑이 나를 통과해 흘러나왔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어요.

이 고백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동시에 엄청나게 자유롭게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내가 해내야 하는 의무'에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 흘려 주시는 선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랑이 잘 안 되는 날이 있죠. 가족에게 짜증이 나고, 교회 형제에게 마음이 닫힐 때. 그럴 때 '내가 더 사랑해야 해'라고 자신을 채찍질하기보다는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주님, 제 안에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먼저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오늘도 제게 흘려 주십시오.' 그 고백이 바로 우리가 사랑을 다시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2. 하나님의 '먼저'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였다

‘먼저’라는 말, 우리가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다는 이 말은 단순히 시간이 한참 앞섰다는 뜻이 아닙니다. 조건이 하나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보통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이유를 찾습니다. ‘얼굴이 예뻐서’, ‘성격이 좋아서’, ‘나한테 잘해 줘서.’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그런 이유를 찾지 않으셨어요.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행동을 하기도 전에, 우리가 아직 완벽하지 않고 실수투성이고 때로는 밉살스러울 때 이미 좋아하셨습니다. 여러분, 지난주에 친구랑 싸운 적 있나요? 그 친구를 보면 속이 상하고 ‘저 인간 별로야’ 싶을 때가 있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보면서도 ‘나는 너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가 초라해 보이고 발걸음이 무거운 날에도 그분의 시선은 여전히 당신을 향합니다. 세상의 유행은 금세 빛을 잃지만, 이 사랑은 영원히 당신 곁을 지킵니다. 혹시 오늘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라고 느끼는 친구가 있나요? 그런데 하나님은 자격이 없을 때 이미 먼저 사랑하셨어요. 그 사랑을 오늘 그냥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요? ‘나는 괜찮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좋아하셔서 괜찮다’고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그 마음, 사실 우리는 그 마음을 아주 잘 압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이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의 '먼저'는 그 마음조저도 뛰어넘습니다.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그 사랑이 더 선명해집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경건하지 않을 때에,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시간 순서대로 보면 이겁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있을 때, 하나님을 등지고 있을 때, 심지어 '하나님 따위 필요 없어'라고 말하던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이 먼저 움직이셨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이게 은혜입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여러분, 선물을 받을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고맙고 기쁘죠. 그런데 '내가 이만큼 잘해서 받았다'고 생각하면 그건 은혜가 아니라 보상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자꾸 지치고 힘든 이유가 혹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내가 기도를 많이 해서', '내가 헌금을 열심히 해서', '내가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와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착각할 때, 그 사랑은 자꾸 내 행동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잘하면 사랑받고, 내일 실수하면 사랑이 줄어드는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정은 내 행동이 변해도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여러분이 힘들고 지쳐서 교회에 나왔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기도가 잘 안 되고, 말씀이 읽히지 않고, 마음에 확신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고, 그 사랑은 지금도 여러분을 붙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사랑을 누리면 됩니다. 공기를 들이마시고 햇살을 온몸으로 맞는 것처럼 말이죠.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시기에 오늘도 괜찮다는 이 확신을 품고 하루를 걸어보세요.

3.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이제 자연스럽게 사랑할 수 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챙기고, 신경 쓰는 그 마음이 분명히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문장 끝을 보세요.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가 우리 안에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마치 누군가가 먼저 물을 틀어 놓으면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나올 수밖에 없듯이,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을 그대로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억지로 '사랑해야지'라고 다짐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신다는 사실이 확실해지면, 그 마음이 저절로 주변으로 퍼져 나가요. 급식실에 혼자 앉아 있는 친구가 보일 때, '저 친구도 나처럼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워집니다. 단톡방에서 누군가 소외당하는 말이 오갈 때, '하나님이 먼저 나에게 다가와 주셨듯이 나도 먼저 말을 걸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요. 우리가 하는 모든 사랑의 작은 행동들, 문자 한 통, '밥 먹었어?'라는 한마디, 먼저 웃어 주는 얼굴. 그게 사실 거창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먼저 나에게 건네신 '니가 좋아'를 그대로 되돌려 드리는 모습인 겁니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이미 받은 사랑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오늘, 그 반응이 여러분의 하루 속에서 흘러나오길 바랍니다.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이 드시나요? '내가 진짜 그렇게 사랑받고 있는 걸까?' 사랑받고 있다는 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 같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그럴 때 우리는 다시 '내가 먼저 사랑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하지만 요한은 말합니다. 사랑의 시작은 우리의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였다고.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조차도, 그 사랑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흐르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숨 쉬는 공기를 의식하지 못해도 공기가 우리를 살리고 있는 것처럼요. 우리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바로 그 사실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내가 사랑을 못 느낀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안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 그게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이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을까요? 작은 것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그냥 바라보는 것부터. '저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한 번만 떠올려 보세요. 그러면 말투가 달라지고, 표정이 달라집니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 '하나님이 너를 엄청 사랑하신단다'라고 속삭여 보세요. 그 말이 내 입에서 나갈 때, 내 귀에도 그 말이 들어옵니다. '아, 나도 그렇게 사랑받고 있구나.' 사랑은 결코 우리의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받은 선물을 그냥 나누는 일일 뿐입니다. 오늘 하루, 그 선물을 꺼내서 옆 사람에게 건네는 손이 여러분의 손이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및 적용

여러분, '니가 좋아' 챌린지, 재미있게 보셨죠?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그 영상들, 한 달만 지나면 누가 올렸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거예요. 유행은 그렇게 스쳐 갑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니가 좋아'는 달라요. 이 사랑은 유행을 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가고,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어도 이 사랑은 조금도 낡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 사랑은 여러분이 한 행동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그분의 사랑은 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는 이 사랑에 기꺼이 머물러 보세요. 내 감정이나 상황이 어떠하든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시험을 망쳐서 자존감이 바닥을 친 날에도, 친구와 다퉈서 마음이 무거운 날에도, 그 사랑은 여전히 여러분을 향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마치 구름이 해를 가린다고 해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억지로 '사랑을 실천해야지'라고 다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신다는 그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를 살아보세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사랑이 입가에 미소로, 친구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로, 먼저 양보하는 손길로 흘러나올 거예요. 그게 진짜 챌린지입니다. 유행처럼 번지는 립싱크 챌린지가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다는 고백이 되는 챌린지 말이에요. 우리 함께 해볼까요?

좋아, 그런데 이 챌린지를 혼자 하기는 쉽지 않죠. 가끔은 '하나님이 정말 나를 좋아하실까?' 의심이 밀려올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주변을 한번 둘러보세요. 교회에 함께 앉아 있는 이 형제, 저 자매도 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때, '아, 저 사람도 하나님께 사랑받는구나' 하고 인정해 주는 것, 그게 서로를 세워 주는 길입니다. 오늘, 옆에 있는 분에게 한번 말해 보세요. "하나님이 너를 좋아하신다"고. 그 말이 내 입술에서 나와 그분의 귀에 들어갈 때,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그 사랑이 더 선명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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