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코어'가 붙잡는 때, 그 때는 누가 정할까요?
설교 스페이스
토마토와 참외, 수박과 옥수수. 제철 과일 향을 담은 인센스가 팔리고, 제철 식재료를 챙겨 먹는 사람이 늘었어요. 지금 이 계절에 딱 맞는 것을 골라 누리는 '제철코어' 감성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를 잡았죠.
표면 아래를 보면
제철을 챙긴다는 건 사실 '아무 때나'를 거부하는 일이에요. 언제든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세계에서 자란 세대가 굳이 지금만 되는 것을 고르는 거니까요. 그 아래에는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계절이 오고 가는 건 내가 정할 수 없지만, 그 계절에 무엇을 누릴지는 내가 고를 수 있잖아요. 마음대로 안 되는 시간 속에서 그나마 내 손에 쥔 몫을 확인하는 방식인 셈이에요.
그래서 제철코어는 취향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시간 이야기예요. 때를 잘 고르고 싶다는 마음은, 때가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아는 마음이에요. 강단이 만날 지점이 바로 여기예요. 무엇을 누릴까 옆에, 이 때를 누가 정하는가라는 질문을 나란히 놓아 보는 거죠.
그래서, 설교로 푼다면
방향 하나. 때를 정하는 손이 따로 있어요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전도서 3:1-8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전도자가 늘어놓는 목록에는 고르고 싶지 않은 때가 절반이에요. 울 때와 잃을 때, 헐 때와 버릴 때가 웃을 때와 나란히 놓여 있죠. 좋은 때만 골라 담는 감각과 달리, 이 본문은 고르지 않은 때까지 하나님의 기한 안에 둬요.
⚠️ 함정. '다 때가 있다'를 운명론이나 수동적 체념으로 만들지 않게 해요. 기한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은 손을 놓으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이 때에 맡겨진 일이 있다는 말이에요.
방향 둘. 아름다움은 때를 따라 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3:11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아름답게'는 시간 밖이 아니라 '때를 따라'에 붙어 있는 말이에요. 그런데 같은 절이 곧바로 덧붙여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처음과 끝을 사람은 측량할 수 없다고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믿음과 설명 사이의 그 자리에서 움직여요.
⚠️ 함정. 잘 먹고 잘 쉬자는 웰빙 라이프스타일 예찬으로 끝나지 않게 해요. 본문이 말하는 아름다움은 누림의 품질이 아니라 지으신 분의 솜씨를 가리켜요.
방향 셋. 앞날이 누구 손에 있나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시편 31:15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시인은 앞날이 주의 손에 있다고 고백한 바로 다음에 건져 달라고 부르짖어요. 맡김과 간구가 한 문장 안에 붙어 있죠. 때를 하나님께 드린 사람이 오히려 더 간절하게 기도한다는 뜻이에요.
⚠️ 함정. 맡김을 체념으로 바꾸지 않게 해요. 앞날이 주의 손에 있다는 고백은 기도를 접는 자리가 아니라 여는 자리예요.
제철코어는 '지금 아니면 못 누린다'에서 출발해요. 오늘 본문들은 '이 때를 누가 지으셨나'에서 출발하고요. 계절을 챙기는 마음을 나무라지 않고 그 마음이 향할 곳을 가리킨다면, 강단이 한결 가까워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