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관계성'이 유행인 이유, 가식 없는 사랑을 설교로 푼다면
설교 스페이스
'콩콩팜팜', 'B주류초대석', '보검 매직컬'. 요즘 예능에서 사람들이 찾는 건 잘 짜인 웃음보다 출연자들의 꾸미지 않은 친밀함이에요. 연출된 케미 말고 진심이 담긴 관계, 이른바 '찐 관계성'이 콘텐츠의 경쟁력이 됐죠.
표면 아래를 보면
시청자의 안목이 갑자기 높아진 건 아니에요. 연출을 알아보는 눈이 밝아진 거죠. 그래서 요즘 시청자는 재미를 즐기기 전에 먼저 판별해요. 카메라가 꺼져도 저 사람들이 서로를 좋아할까 하고요.
이건 사실 예능 취향이 아니라 관계 피로예요. 만남이 곧 기록이 되는 시대에 자란 세대는 자기 관계도 콘텐츠처럼 관리해 왔어요. 사진이 잘 나오는 만남, 티 나지 않게 재는 안부, 읽씹으로 오해받지 않으려는 답장. 그렇게 스스로를 편집해 본 사람일수록 남의 관계에서 편집의 흔적을 잘 찾아내요. 그래서 찐 관계성 앞에서 사람들이 안도하는 거예요. 저기엔 편집이 없어 보이니까요. 갈망을 한 줄로 줄이면 이래요. 나를 편집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가 어딘가 있을까.
그래서, 설교로 푼다면
방향 하나. 사랑은 거짓 없음에서 시작해요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로마서 12:9-10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바울은 사랑을 감정으로 정의하지 않고 거짓 없음에서 출발해요. 그다음이 흥미로워요. 진심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고백이 아니라 순서를 말하거든요. 존경하기를 누가 먼저 하느냐. 화면 밖 우리 관계에서 진짜와 연출이 갈리는 자리도 대체로 거기예요.
⚠️ 함정. '세상 관계는 다 가짜'라는 냉소로 몰지 않게 해요. 이 본문은 바깥을 판정하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 사랑을 점검하라는 말이에요.
방향 둘. 말과 혀 말고, 행함과 진실함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1서 3:18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말로 하는 사랑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말은 편집이 쉽죠. 그래서 요한은 사랑의 증거를 행함 쪽으로 옮겨 놓아요. 이 말씀이 진짜인지는 강단보다 주차장과 주방에서, 아무도 안 볼 때 남는 사람에게서 먼저 확인돼요.
⚠️ 함정. 교회 공동체를 이상화해서 실제 갈등을 덮지 않게 해요. 행함과 진실함은 갈등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갈등을 덮지 않고 정직하게 다룬다는 뜻이에요.
방향 셋. 뜨거움 앞에 순종이 있어요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1:22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순서를 보면 진리에 순종함이 먼저 나와요. 거짓 없는 사랑은 마음먹기로 생기지 않고, 진리 앞에서 자기를 정리한 사람에게서 자란다는 거예요. 예능이 보여 주는 찐 관계성이 운 좋게 잘 맞은 사이라면, 여기 나오는 사랑은 시간을 들여 만들어지는 사랑이에요.
⚠️ 함정. 우리 공동체는 이미 진짜라는 자평으로 마무리하지 않게 해요. 뜨겁게 사랑하라는 명령은 아직 그러지 못한 자리에 주어진 말이에요.
화면 속 찐 관계성은 시청자가 발견한 것이지만, 교회의 교제는 함께 만들어 가는 쪽이에요. 진짜를 알아보는 눈이 이렇게 밝아진 시대라면, 강단이 가식 없는 사랑을 정직하게 다룰 기회이기도 해요.
🤖 아래는 '설교 스페이스'가 이 방향으로 뽑은 AI 초안이에요. 검증된 주해와 본문 위에서 생성했지만, 강단에 서기 전 목회자의 손질을 전제한 초안입니다. 그대로 읽는 원고가 아니라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는 출발점이에요. 당신의 본문·부서·문체에 맞춘 원고는 설교 스페이스에서 만들 수 있어요.
[AI 초안 예시] 청년부 설교 · 로마서 12:9-10
가식 없는 사랑
서론
친구들과 밥을 먹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지금 이 대화, 진짜일까?’ 서로 웃고 맞장구치는데, 마음은 다른 데 있는 것 같고. SNS에는 완벽한 일상이 가득한데, 정작 우리는 누군가와 진심으로 마주하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다.
요즘 예능에서도 그걸 알아본 건지, 꾸민 케미 말고 ‘찐 관계성’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뜬다더군요. 출연자들이 서로를 편하게 부르고, 티격태격하면서도 끝내 챙기는 모습. 그걸 보며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건 사실 ‘잘 만든 연출’이 아니라 ‘진짜 같은 진심’입니다. 우리 마음이 제일 원하는 게 그런 거잖아요. 꾸며진 관계에 지쳐서, 누군가와 있어도 외로운 사람들이 ‘이 사람은 진짜구나’ 싶은 관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갈망을 향해 아주 분명한 한마디를 건넵니다. 로마서 12장 9절,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사랑에 거짓이 없다는 말, 참 단순한데 우리 삶에서는 참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끼리 모인 자리에서도 우리는 가끔 말을 아낍니다. 진심을 꺼내기보다는 무난한 대답을 하고, 속마음은 숨긴 채 웃음을 짓습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말로만 하는 사랑은 금방 들통이 납니다. 행함과 진실함, 그게 사랑의 온도입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가 먼저 받은 사랑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진실해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짓 없이 다가오셨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마음에 품고, 이번 주에는 관계의 기술을 부리기보다, 상대의 삶에서 발견한 귀한 가치를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연습을 해보세요. 상대가 받아들이든 못 받아들이든, 우리의 말에 거짓이 없게 하는 연습입니다.
1. 사랑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이 말은 참 좋은데, 우리는 그 '거짓 없는 사랑'을 늘 조금씩 흉내 내며 삽니다. 상대가 좋아할 말을 골라 하고, 웃는 표정을 미리 연습하고, 마음에 없는 칭찬을 건넵니다. 관계를 지키는 게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지키는 게 관계인지 가면인지 헷갈립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 거짓 없는 사랑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한 줄로 보여줍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악을 미워하는 것, 이게 왜 사랑과 연결될까요. 사랑한다는 건 그냥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라, 상대에게 해가 되는 것을 그냥 두지 않는 마음입니다. 친한 척 하면서도 상대를 이용하는 일, 웃으며 넘기지만 결국 누군가를 상처 주는 말들, 분위기에 휩쓸려 동조하는 잘못된 일들. 진실한 사랑은 이런 것들을 '괜찮겠지' 하고 넘기지 않습니다. 악을 미워한다는 건, 그런 것들과 선을 긋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선한 것을 붙잡습니다. 상대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말, 비록 듣기는 불편해도 솔직하게 해주는 말, 그게 선에 속하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악을 그냥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사랑하니까' 참아주는 거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사랑이 분별력을 잃고 무조건적인 수용이 되어버리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방임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상대 안에 있는 악까지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오히려 상대를 향한 진짜 사랑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결국 우리 삶의 태도로 드러납니다. 꾸며낸 말이 아니라, 삶에서 실제로 행해지는 선한 행동으로 말입니다.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 애쓰는 대신, 그 사람 안에 깃든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 진솔하게 건네보세요. 그 작은 진실함이 관계의 물꼬를 틉니다. 그 연습이 쌓일 때, 우리의 관계는 꾸며진 케미가 아니라 진심이 통하는 관계가 되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진심이 통하는 관계를 가로막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비교입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면서도, 그 사람이 나보다 나아 보이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인정받는 자리에서 함께 기뻐해 주는 대신, 속으로는 '나도 저만큼 하는데' 하고 아쉬워합니다. 거짓 없는 사랑은 그 마음까지 내려놓는 일입니다. 상대의 잘됨을 나의 손해로 보지 않고, 그저 기뻐해 주는 것.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서 말합니다. 서로 우애하고 먼저 존경하라고. 남보다 앞서 나가려는 마음을 접고, 상대를 먼저 높여 주는 마음. 그게 거짓 없는 사랑의 두 번째 얼굴입니다.
2. 진실한 사랑은 서로를 먼저 존중하게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더 들어갑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 사랑이 추상적인 감정에 머물지 않게 하는, 아주 구체적인 두 가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우애이고, 다른 하나는 존경입니다. 우애는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나누고, 아프다는 말을 들으면 진심으로 걱정되는 그런 따뜻한 유대감입니다. 그리고 존경은 상대를 나보다 앞에 세우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에 '서로 먼저'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서로 먼저 우애하고, 서로 먼저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냐를 재지 말고, 내가 먼저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늘 '존중받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존경하기를 먼저 하라'고 합니다.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받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먼저 주는 쪽으로 우리를 부릅니다. 존중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먼저 내려놓고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깊은 관계를 경험합니다. 상대가 나를 먼저 존중해 주지 않아도, 우리가 먼저 시작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게 거짓 없는 사랑이 관계 속에서 맺는 열매입니다. 서로 먼저 존중하는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지체들이 서로를 섬길 때 가능해집니다. 이것은 세상의 관계와는 다른, 복음이 만든 새로운 질서입니다. 마음이 조금 불편한 지체라도 좋습니다. 그에게 먼저 다가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으로 존중의 태도를 보여주세요. 상대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먼저 시작하는 사랑, 그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서로 먼저 존중하는 공동체는, 정작 우리가 가장 힘들 때에 그 힘이 드러납니다. 의견이 갈리고, 서로의 말이 상처가 되는 그런 날에도 우리는 그 사람을 여전히 존중할 수 있습니까? 존중은 기분 좋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실수했을 때, 나와 다를 때, 오히려 그때 더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상대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을 듣기 전에, 그 사람을 존중하는 일부터 실천합니다. 동의할 수 없는 말 속에서도 그 사람을 향한 존중은 지켜집니다. 이것이 세상과 다른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세상은 말이 틀리면 사람까지 무너뜨리지만, 우리는 말이 틀려도 사람을 세워 줍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그런 존중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상대를 나보다 앞에 세우는 일이, 마치 내가 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존중하면 상대가 이기는 것 같고, 내가 한발 물러서면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눈치를 봅니다. 먼저 하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복음은 그 눈치 싸움에서 우리를 빼내 줍니다. 우리가 먼저 존중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존중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하나님을 등을 돌렸을 때,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셔서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은 이제 먼저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든, 그게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먼저 존중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받은 은혜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가 쏟는 수고를 귀하게 여기는 일부터 시작하세요. 이런 사소한 배려가 모여 우리 공동체의 온도를 높입니다. 우리가 먼저 시작하는 그 사랑을, 오늘 이 시간 다시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이 사랑은 우리가 이미 받은 은혜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런데 잠깐, 우리가 이 사랑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악을 미워하고 선을 붙잡는 것도, 서로 먼저 존중하는 것도, 말로는 쉽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모든 권면을, 앞선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 길게 풀어놓은 이야기 위에 세웁니다. 그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선을 행할 힘이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 그 사랑은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거저 주신 선물입니다. 바울은 이 은혜를 먼저 선포하고 나서야, 이제 그러니 서로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을 받았기에, 이제 우리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상대가 나를 먼저 인정해 주고, 먼저 다가와 주고, 먼저 사랑해 줄 때 비로소 우리도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등을 돌리고 있을 때에, 주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기에, 이제 우리는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상대가 나를 먼저 존중해 주지 않아도, 상대가 진심이 아닌 것 같아도, 우리는 먼저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먼저 시작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사랑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더 열심히 사랑하라'고 채찍질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는 이미 그렇게 사랑받고 있다'는 선언입니다. 그 선언을 믿을 때, 우리는 가면을 벗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온전히 사랑받고 있으니까요. 그 사랑을 붙잡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거짓 없는 얼굴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어떻게 대하셨는지 그 깊은 사랑을 묵상하세요. 그 사랑이 내 안에 머물 때, 비로소 타인을 향한 나의 태도도 자연스럽게 변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잊고 사는지 모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할 일이 쌓여 있고,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를 판단하는 것 같고, 하루가 끝나면 왠지 지치고 외롭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가면을 씁니다. 괜찮은 척, 강한 척, 아무 일 없는 척. 그런데 주님은 그런 우리를 보며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미 사랑받고 있다고. 네가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너를 안다고. 그 말씀을 붙잡는 날, 우리는 가면을 벗어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맛봅니다.
그 안도감이 우리를 사람들에게로 이끕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실수하고, 상대가 부족하고, 상대가 우리를 실망시켜도, 그 사람도 나처럼 사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천천히 말하게 되고, 좀 더 잘 들어주게 되고, 좀 더 쉽게 용서하게 됩니다. 이것이 거짓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만들어 낸 사랑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받은 사랑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먼저 다가가 주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아직 화해하지 못한 형제, 자꾸만 미뤄두는 전화, 마음속에 쌓아 둔 미안함. 그 일을 시작할 힘은 우리 안에 없어도,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그분 안에는 있습니다. 그 사랑을 의지해서, 이번 한 걸음을 내딛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 한 걸음이 우리 공동체를 진실한 사랑의 자리로 이끌 것입니다.
결론 및 적용
사랑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우리는 꾸며진 관계에 지쳐 있지만, 본문은 더 나은 관계의 길을 보여줍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을 붙잡으며, 서로를 먼저 존중하는 것. 이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거짓 없는 사랑에서 흘러나옵니다. 관계의 주도권을 내가 쥐려 하지 말고,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먼저 손을 내미세요. 그 결단이 우리 교회를 진정한 사귐의 자리로 이끕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이 실천은 쉽지 않습니다. 악을 미워하는 일은 오히려 쉽습니다. 남을 미워하는 데는 재능이 있으니까요. 문제는 선을 붙잡는 일입니다. 내가 먼저 존중해 주고, 내가 먼저 한 걸음 다가서는 일.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요. 마음은 알면서도 몸이 먼저 반응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사랑을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주님은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했을 때,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품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형제를 향해 먼저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보세요. 어색함을 깨고 건네는 안부와 진솔한 사과가 막힌 담을 허무는 열쇠입니다. 작아 보이지만, 그 작은 실천이 우리 교회를 변화시킵니다. 관계가 회복되고, 신뢰가 쌓이고,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우리가 서로를 먼저 존중할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거창한 헌신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 내 곁에 있는 사람을 향한 진실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주님께서 우리 안에 이미 심어 두셨습니다. 이제 그 마음을 꺼내어 실천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서로 먼저 존중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받은 거짓 없는 사랑이, 우리를 통해 이웃에게 흘러가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마치며, 오늘 받은 은혜를 삶으로 옮기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관계 가운데 함께하시고, 거짓 없는 사랑으로 서로를 품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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