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는 게 익숙한 청소년부, 창세기 3장 설교
설교 스페이스
캐릭터에 직접 그림을 그려 넣고 배경 속에 숨는 게임 '메챠 카멜레온'이 릴스와 쇼츠를 점령했어요. 일본 개발자 두 명이 만든 인디 게임인데 출시 한 달도 안 돼 1500만 장 넘게 팔렸고, 최고 동시접속자는 34만 명을 기록했고요. 평소 게임을 하지 않던 사람들까지 플레이 영상을 올리고 있어요.
표면 아래를 보면
규칙만 보면 잘 숨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돌려 보고 저장하는 장면은 정반대예요. 벽지 무늬를 삐뚤삐뚤 따라 그려 놓고 벽인 척하다가 어설프게 들키는 순간이거든요. 인기의 핵심이 승리가 아니라 발각인 셈이죠.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하루도 사실 숨기 기술의 연속이에요. 튀지 않는 옷, 단톡방에서 적당한 리액션 타이밍, 프로필 사진 하나 고르는 데 걸리는 삼십 분. 주변 색에 잘 맞추면 안전한데, 잘 맞출수록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해요. 그래서 배경에 스며드는 데 성공한 아이일수록 조용히 지쳐 있곤 하죠. 들키는 장면에서 웃음이 터지는 건, 사실 들키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예요. 발각은 이 놀이에서 패배지만, 사람에게는 자주 안도예요.
그래서, 설교로 푼다면
방향 하나. 먼저 이름을 부르는 쪽이 있어요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세기 3:8-10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아담은 숨는 데 성공해요. 다만 여기서 숨었다는 건 승리가 아니라 관계가 끊어졌다는 신호예요. 그리고 그다음이 결정적이에요. 하나님이 먼저 부르시고, 첫 마디가 추궁이 아니라 질문이거든요. 이미 다 아시는 분이 굳이 물으며 찾아오시는 장면으로 읽으면 본문의 온도가 달라져요.
⚠️ 함정. 게임이나 놀이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게 해요. 훅을 비난의 소재로 쓰면 청소년은 그다음 말을 듣지 않아요.
방향 둘. 숨을 곳이 없다는 게 안심이 될 때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시편 139:7-12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어디로 피하리이까'는 도망칠 곳이 없다는 탄식처럼 들리지만, 바로 다음 줄이 그 뜻을 뒤집어요.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신다고 하거든요. 숨는 데 익숙한 아이에게 이건 들킴이 아니라 발견에 가까워요.
⚠️ 함정.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감시 카메라처럼 그리지 않게 해요. 시편 139편의 결론은 두려움이 아니라 인도하심이에요.
방향 셋. 배경색에 나를 맞추지 않아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카멜레온과 정확히 반대 방향이에요. 주변 색에 맞춰 나를 지워야 안전한 세계에서, 구별되어 드러나는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묻는 자리죠. 또래 압력 앞에 선 아이들의 상황과 곧바로 맞닿아요.
⚠️ 함정. 구별을 '튀어야 한다'는 숙제로 바꾸지 않게 해요. 본문이 말하는 변화는 겉모습의 차별화가 아니라 마음이 새로워지는 데서 시작해요.
잘 숨는 아이를 나무라는 설교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이번 주 강단은 숨은 사람을 먼저 부르시는 분이 계시다는 한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멀리 갈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