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못하는 청년, 고린도전서 6장 설교

설교 스페이스

'공부 약'·'다이어트 약'으로 시작되는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이 글이 출발한 요즘 트렌드예요

정부가 프로포폴·졸피뎀·식욕억제제 등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 문제를 지적하며 관리 대책에 나섰습니다.

특히 ADHD 치료제를 '공부 약', 식욕억제제를 '다이어트 보조제'로 가볍게 소비하다 상습·과다 복용으로 이어지고, 중독 때문에 스스로 멈추지 못해 더 강한 약을 찾게 된다는 경고가 나옵니다.

출처: 뉴닉 데일리

'공부 약', '다이어트 보조제'. ADHD 치료제와 식욕억제제를 부르는 요즘 말이에요. 정부가 프로포폴·졸피뎀·식욕억제제 같은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을 지적하며 관리 대책에 나섰죠. 가볍게 쓰다 상습·과다 복용으로 이어지고, 스스로 멈추지 못해 더 강한 약을 찾게 된다는 경고가 함께 나왔어요.

표면 아래를 보면

이름부터 보면 좋겠어요. 마약류라는 말 대신 '공부 약'이라 부르는 순간, 그건 약이 아니라 학용품이 돼요. 문구점에서 사는 형광펜처럼요. 이 세대는 쾌락을 좇으려고 이 이름을 만든 게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예요. 더 잘 해내려고, 더 오래 앉아 있으려고, 몸을 원하는 상태로 맞춰 두려고 만든 이름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사실 방종이 아니라 통제 욕구예요. 집중력도 체중도 관리 대상이 된 세대에게 약은 자기 관리의 도구로 보여요. 역설은 여기서 생기죠. 통제하려고 잡은 것이 통제권을 가져가요. 처음엔 시험 기간에만 쓰던 것이 시험이 끝나도 남고, 나중엔 약을 끊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 돼요. 청년부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의 속마음은 아마 이럴 거예요. 나는 아직 내가 조절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요.

그래서, 설교로 푼다면

방향 하나. 할 수 있다와 매이지 않는다는 다른 말이에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고린도전서 6:12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바울은 같은 문장을 두 번 반복하면서 기준을 두 번 바꿔요. 처음엔 유익, 다음엔 주도권이에요.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만둘 수 있느냐를 묻는 거죠. 이 질문은 약에만 걸리지 않아요. 자기 관리라는 이름으로 붙잡은 모든 편리한 것에 걸려요.

⚠️ 함정. 중독을 의지 부족이나 믿음 부족으로 정죄하지 않게 해요. 이 본문은 매인 사람을 판정하라는 말이 아니라 나를 무엇이 끌고 있는지 살피라는 말이에요.

방향 둘. 종은 스스로 나가지 못해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요한복음 8:34-36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상태를 이보다 정확히 그린 문장이 드물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진단에서 끝내지 않으시고 신분을 바꾸는 쪽으로 가세요. 자유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아들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말이죠.

⚠️ 함정. 겁주기로 끝내지 않게 해요. 중독의 무서움을 길게 말하고 강단을 내려오면 남는 건 두려움뿐이에요. 마지막 자리는 회복의 소망에 내주세요.

방향 셋. 원함은 있는데 행함이 없을 때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로마서 7:18-25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끊고 싶은데 안 끊긴다는 고백을 바울이 먼저 해요. 이 본문의 힘은 해결책이 아니라 동석에 있어요. 그다음 문장이 자책이 아니라 감사라는 점도 같이 읽어 주세요. 건져낼 분이 따로 계시다는 고백이니까요.

⚠️ 함정. 치료와 돌봄을 신앙의 반대편에 두지 않게 해요. 병원에 가는 일과 기도하는 일은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함께 가는 길이에요.

이름을 바꿔 부르면 무게가 가벼워지지만, 매이는 무게는 그대로 남아요. 강단이 할 일은 그 이름을 다시 정확히 부르고, 매인 사람에게 나갈 문이 있다고 알려 주는 일이에요.


🤖 아래는 '설교 스페이스'가 이 방향으로 뽑은 AI 초안이에요. 검증된 주해와 본문 위에서 생성했지만, 강단에 서기 전 목회자의 손질을 전제한 초안입니다. 그대로 읽는 원고가 아니라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는 출발점이에요. 당신의 본문·부서·문체에 맞춘 원고는 설교 스페이스에서 만들 수 있어요.

[AI 초안 예시] 청년부 설교 · 고린도전서 6:12

자유롭게, 주님께 속해

서론

잠깐 쉬려고 켠 영상을 한 편만 더 보고 자려 했는데, 어느새 밤이 깊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만하려고 해도 손이 먼저 움직이고, 다음 날 피곤할 것을 알면서도 또 같은 일을 반복하지요. 화면 앞에서만 그런 일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필요해서 시작한 소비가 마음을 끌고 가고, 잘해 보려고 붙든 일이 몸을 지치게 합니다. 관계에서도 상대의 반응에 매달리다 보면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잊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선택당하는 듯한 느낌, 한 번쯤 겪어 보셨을 겁니다.

요즘에는 잠깐 집중하려고 ‘공부 약’을 찾고, 조금 더 빨리 살을 빼려고 ‘다이어트 약’을 찾는 일도 가볍게 이야기됩니다. 처음에는 내 필요를 채우려 손댄 일이 어느 순간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 들어선 사람을 의지 부족으로 몰아세우면 회복의 길은 더 멀어집니다. 치료와 돌봄을 받고 곁의 도움을 구하는 일은 믿음과 맞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묶인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말에는 당시 사람들이 품었던 한 생각이 드러납니다. ‘할 수 있으면 해도 되지 않는가’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도 비슷한 질문을 품습니다. 내가 돈을 쓸 수 있고,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유일까요? 지금 내게 허락된 일이 나를 살리고 있는지, 어느새 나를 붙들고 있는지 돌아볼 때입니다. 오늘 고린도전서 6장 12절 앞에서, 자유를 내 욕망의 크기로 재지 않고 주님 안에서 다시 묻는 시간을 함께 가져 보겠습니다.

1. 자유는 나를 살리는 쪽을 고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내세우던 말을 먼저 받아 줍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복음 안에서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사람의 시선과 율법의 자랑에 붙들려 살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건져 내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말을 그대로 밀고 가지 않습니다. 곧바로 이렇게 덧붙입니다.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할 수 있다는 사실과 내게 좋은 선택이라는 사실은 서로 다릅니다. 허락된 범위가 넓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이것이 내 삶을 살리고 있습니까?

카페인 음료를 마시며 밤을 새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의 과제나 시험을 치러내는 데는 요긴할지 모르지만, 정작 내 몸과 마음의 리듬을 깨뜨려 장기적으로는 나를 더 깊은 피로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인지 따지기보다, 그 선택이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 살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2절에서 바울은 자유를 욕망의 크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해낼수록 자유롭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자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제대로 돌보는 방향을 분별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내 몸을 함부로 소모하지 않고, 마음을 쉴 틈 없이 몰아붙이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는 선택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데서 자유가 자랍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예배와 기도가 내 삶을 살리는 자리로 이어지는지, 신앙의 이름으로 나를 더 몰아세우고 있는지 천천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유익’은 당장 기분이 좋아지는 일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내 삶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세우고,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를 함께 살리는 것을 말합니다. 맛있는 음식도, 쉬는 시간도, 돈을 쓰는 일도,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그 자체로 선악이 갈리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내 마음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는 분명히 드러납니다. 어떤 선택은 나를 잠시 달래지만, 어떤 선택은 내가 맡은 공부와 일과 관계를 다시 감당할 힘을 줍니다. 바울은 그 차이를 보라고 우리를 부릅니다.

한꺼번에 삶을 바꾸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오랫동안 나를 옭아매던 습관 하나를 주님 앞에 정직하게 꺼내 놓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선택이 내 영혼을 살리는지, 아니면 하나님과 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지 가만히 물어보세요. 혼자 힘으로 버겁다면 전문가의 상담이나 곁에 있는 이들의 손길을 구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회복의 통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소모시키는 욕망으로 내모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는 내게 가능한 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길을 알아보고 그 길을 택하는 은혜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지친 몸과 마음을 돌보십니다. 그 은혜 안에서 자유는 더 많이 누리는 데서 커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살리는 선택으로 깊어집니다.

그 자유는 선택의 순간에 더 분명해집니다. 바울은 이어서 말합니다.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할 수 있는 일이 많아도 그것이 나를 붙잡고 끌고 다닌다면 자유를 잃은 셈입니다. 사람의 인정에 매여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화가 날 때마다 같은 방식으로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쉬어야 할 때도 일을 멈추지 못하고, 거절해야 할 자리에서도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끌려갈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내가 고른 것 같지만 마음은 이미 그것의 명령을 듣고 있는 모습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욕망의 종으로 살게 하지 않으십니다. 내 기분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주변의 기대가 밀어붙이는 대로 끌려가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과 지혜로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자유에는 멈춤이 들어 있습니다. 먹고 싶어도 멈추고, 말하고 싶어도 한 번 더 생각하고, 사고 싶어도 꼭 필요한지 살피는 힘입니다. 그 작은 멈춤 속에서 우리는 욕망보다 주님을 더 크게 바라봅니다.

무엇인가를 끊어 내는 일만 자유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주님께 속하면 삶의 주인이 바뀝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내 가치가 생긴다고 믿던 마음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리에서 쉬기 시작합니다. 실패를 피하려고 자신을 몰아붙이던 사람이 맡겨진 일을 성실히 하되 결과를 하나님 손에 놓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요구를 다 들어주어야 사랑받는다고 여기던 사람이 사랑으로 돕되 필요한 선을 그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 속한 사람은 모든 요구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지금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일이 있다면 주님 앞에 솔직히 털어놓아 보세요. 내가 주인이 되어 선택하는지, 아니면 그 일에 이끌려 다니는지 말입니다. 혼자 해결하려 끙끙대지 말고 믿음의 동료들과 나누며 한 걸음씩 나아가세요. 주님께 삶의 주도권을 내어드리고 방향을 수정하는 그 겸손한 고백에서 진정한 자유가 시작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질 때 자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주님 안에서 내 욕망을 다스리고 사랑을 선택할 때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주신 자유로 오늘 내 삶을 살리는 쪽을 고릅시다. 그 선택마다 우리를 붙드시고 다시 일으키시는 은혜가 함께합니다.

2. 자유는 어떤 것에도 종이 되지 않고 주님께 속합니다

바울은 자유를 말하다가 한 문장을 더 붙입니다.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얽매인다는 말은 마음에 어떤 생각이 한 번 떠오르는 정도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없고, 손해를 아는데도 계속 끌려가며,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기 어려운 상태를 말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고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내 하루의 순서를 정하고, 기분을 좌우하고, 관계와 잠과 몸을 조금씩 빼앗습니다. 내가 선택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 선택지가 줄어든 것을 발견합니다. 바울은 그런 삶을 자유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 곁에는 이런 일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편리해서 시작한 정기결제가 어느새 끊기 어려운 지출이 되고, 피곤한 마음을 달래려고 찾던 행동이 없으면 불안한 습관이 되기도 합니다. 의료용 약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중하려고, 체중을 줄이려고 시작한 일이 몸과 마음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을 가볍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중독은 사람을 조롱할 일이 아니며, 의지가 약해서 생긴 문제라고 한마디로 밀어낼 수도 없습니다. 뇌와 몸의 변화가 함께 일어나고, 혼자 힘으로 끊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치료와 상담을 받고 곁에서 돌봄을 받는 일은 믿음이 없는 행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길에는 기도만 놓여 있지 않습니다. 필요한 치료와 전문적인 도움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손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한복음 8:36). 예수님은 사람이 죄와 두려움에 계속 끌려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 힘으로 스스로를 풀어낸 뒤에야 주님께 나아가게 하지 않으십니다. 붙잡힌 자리에서 주님을 부를 때 찾아오시고, 숨기던 상처를 드러낼 때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자유는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허락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나를 지배하던 것이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으로 다시 서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주님께 속한다”는 말이 우리를 억누르는 또 하나의 지배를 뜻하지 않습니다. 죄와 욕망이 정한 방향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돌아올 자리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가 길을 잃었을 때 자기 마음대로 아무 길이나 가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믿을 수 있는 보호자의 손을 다시 잡고 집으로 향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주님께 속했다는 고백 안에는 나를 빼앗는 힘이 끝까지 나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소유물처럼 다루지 않으시고, 다시 살아가도록 돌보십니다.

바울은 이어서 우리의 몸을 가볍게 여기지 못하게 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린도전서 6:19).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몸은 욕망을 마음껏 시험해 보는 물건이 아니고, 성과와 외모를 이루어 내는 도구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자리입니다. 몸이 지쳤다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약물이나 행동에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회복을 위해 손을 내미는 일이 주님을 향한 믿음의 모습이 됩니다.

본문은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라고 말합니다(고린도전서 6:19-20). 그 값은 우리가 스스로 치른 대가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사랑의 값입니다. 그러므로 혼자 멈추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면 자신을 정죄하는 데 머물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주님께 숨김없이 가져가고, 믿을 만한 사람과 필요한 도움을 함께 찾는 자리에도 주님이 계십니다. 도움을 받는 동안에도 우리는 버림받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과 삶은 여전히 주님의 것이며, 주님은 붙잡힌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자유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결론 및 적용

고린도전서 6장 12절은 자유를 다시 묻게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가 자유의 기준이 아닙니다. 그 선택이 나를 살리고 있는지, 어느 순간 내 마음과 몸을 끌고 가는지 살피는 데서 자유가 드러납니다. 자전거가 빠르게 달리는 것만으로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멈출 수 있어야 내가 가려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와도 잠시 멈추고, 내 안의 불안이 몰아쳐도 주님 앞에서 방향을 다시 살피는 힘입니다.

이 힘은 내 의지력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우리를 다시 일으킵니다. 습관을 끊어내지 못했다고 자책하며 숨지 마세요. 기도로 주님을 찾고, 필요한 도움을 구하며 공동체와 함께 회복의 길을 걷는 것 또한 믿음의 여정입니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주님께 삶의 방향을 돌리려는 그 작은 몸짓을 하나님은 기쁘게 보십니다.

처음에는 쉼을 얻으려 했던 선택이 어느새 나를 지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를 몰아세우지 않고 다시 부르십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는 약속 안에서, 내 욕망이 정한 길보다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길을 택하게 하십니다. 오늘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직하게 살피며, 주님께 속한 자유 안에서 한 걸음 걸어갑시다. 주님께서 붙드시고 회복으로 이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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