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아 윤정아'는 사실 무엇을 찾고 있을까? 설교로 풀 3가지 방향

설교 스페이스

'윤정아 윤정아' 하고 이름을 두 번 부르면 '왜요 쌤' 하고 받아치죠. 2026년 초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개그우먼 정이랑의 콩트에서 시작한 이 콜앤리스폰스 챌린지가, 레드벨벳 아이린 같은 연예인까지 참여하며 크게 번졌어요. 이름을 부르고 곧장 답하는 이 단순한 놀이가, 사실은 무엇을 건드리는 걸까요.

표면 아래를 보면

콜앤리스폰스가 이렇게 즐거운 건, 이름이 불리고 곧바로 응답이 돌아오는 그 감각 때문이에요.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는 건 '너 거기 있지'라는 확인이고, 내가 받아친다는 건 '나 여기 있어'라는 응답이죠. 조회 수와 익명 댓글 사이에서 존재가 흐릿해지기 쉬운 세대에게, 이름이 또렷이 불리는 경험은 그 자체로 반갑고 안심이 돼요.

그런데 밈의 응답은 '왜요 쌤' 한마디로 가볍게 끝나요. 부름은 있는데, 그 부름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는 묻지 않죠. 재미있는 놀이에는 그걸로 충분해요. 하지만 우리 삶에서 진짜 문제는 '누가 나를 부르느냐'와 '나는 무엇으로 답하느냐'예요.

성경은 이름을 두 번 부르는 장면으로 가득해요. 사무엘아 사무엘아, 모세야 모세야,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놀랍게도 그 부름의 형식이 이 챌린지와 똑 닮았어요. 그래서 이 트렌드는 강단에서 밀어낼 게 아니라, 부름과 응답을 다시 물어 줄 좋은 접점이에요.

그래서, 설교로 푼다면

방향 하나. 무엇으로 답하는가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사무엘상 3:1-10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하나님도 사무엘의 이름을 두 번 부르세요. 하지만 사무엘의 응답은 '왜요 쌤'이 아니라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였어요. 부름에 무엇으로 답하느냐가 그 부름을 놀이로 남길지 소명으로 받을지를 가르죠.

⚠️ 함정. 밈의 가벼운 톤에 눌려 부르심의 무게가 사라지지 않게 조심해요.
이름이 불리는 반가움에서 멈추면, 정작 그 부름이 요구하는 응답은 놓치기 쉬워요.

방향 둘. 부름에는 값이 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세기 22:1-14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아브라함아' 하는 부름 뒤에 이어진 건 상상하기 힘든 요구였어요. 부름은 다정하게 시작되지만, 그 응답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게 했죠. 부르심에는 언제나 따르는 값이 있어요.

⚠️ 함정. 부르심의 무게, 곧 순종의 대가를 값싸게 덮지 않게 해요.
부름을 즐거운 화답으로만 그리면, 아브라함이 걸어간 사흘 길의 무게가 빠져 버려요.

방향 셋. 양 떼 치던 자리에서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출애굽기 3:1-6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은 모세를 성전이 아니라 양 떼를 치던 평범한 광야에서 부르셨어요. '모세야 모세야' 하는 부름은 특별한 소수만의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찾아왔죠. 부름은 늘 지금 내가 선 자리에서 시작돼요.

⚠️ 함정. 부름을 특별한 소수의 소명으로만 좁히지 않게 해요.
평범한 삶으로의 부르심도 똑같이 거룩한 부름이에요.

세 방향 모두 '이름을 부르고 답하는' 그 반가움을 나무라지 않아요. 오히려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요. 우리를 이름으로 부르시는 분 앞에서 진짜 물음은 부름이 있느냐가 아니라, 그 부름에 나는 무엇으로 답하느냐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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