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로 끝나는 청년부 봉사, 사도행전 2장 설교

설교 스페이스

35년째 수익을 동네에 돌려주는 약국

이 글이 출발한 요즘 트렌드예요

서울 구로구에 '우리네약국'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1988년 의대생·약대생·간호대생들이 의료 봉사를 하려고 만든 연합동아리 '건강의집'에서 시작해, 후원금을 모아 1991년 문을 열었습니다.

약사들은 일정한 월급만 받고 운영비를 뺀 수익은 지역 주민의 건강과 복지에 쓰는 것이 창립 원칙이었습니다.

지자체 복지가 부족하던 시절부터 소년소녀가장에게 약을 무료로 주고, 장애인 치과 진료를 돕고, IMF 때는 실직 가정 의료비를 깎아 주었습니다.

월급조차 나오지 않던 때도 있었지만 약사들은 그 자리를 지켰고, 그렇게 35년이 흘렀습니다.

출처: 뉴닉 데일리

서울 구로구에 '우리네약국'이라는 곳이 있어요. 1988년 의대생·약대생·간호대생들이 의료 봉사를 하려고 만든 연합동아리 '건강의집'에서 시작해, 후원금을 모아 1991년에 문을 열었어요. 약사들은 일정한 월급만 받고 운영비를 뺀 수익은 지역 주민의 건강과 복지에 쓴다는 것이 창립 원칙이었고요. 그렇게 35년이 지났어요.

표면 아래를 보면

지자체 복지가 부족하던 시절부터 소년소녀가장에게 약을 무료로 주고, 장애인 치과 진료를 돕고, IMF 때는 실직 가정의 의료비를 깎아 주었어요. 월급조차 나오지 않던 때도 있었지만 약사들은 그 자리를 지켰고요. 이 이야기에서 우리를 멈추게 하는 건 착함의 크기가 아니라 35년이라는 시간이에요.

청년부와 교육부서의 봉사는 대체로 여름 한 주와 연말 한 번에 몰려 있어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선한 일이 각자의 결심 위에만 얹혀 있으면, 결심이 식는 속도만큼 그 일도 사라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매년 다시 뜨거워질 방법을 찾고, 아이들은 매년 다시 소진돼요. 우리네약국이 오래 갈 수 있었던 건 그 사람들이 남달리 착해서가 아니라, 착함을 개인의 의지에 맡기지 않고 운영 원칙으로 못 박아 두었기 때문이에요. 35년을 버틴 힘은 뜨거운 마음이 아니라 식어도 굴러가는 원칙이었어요.

그래서, 설교로 푼다면

방향 하나. 나눔이 감정이 아니라 구조였어요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44-47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본문의 나눔은 감동적인 한 번의 헌금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상 구조예요. '날마다'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가 그걸 보여줘요. 우리 부서의 나눔이 그날의 분위기에 기대고 있는지, 아니면 원칙으로 서 있는지를 나란히 놓고 물어볼 수 있는 자리예요.

⚠️ 함정. 미담을 칭찬하다 '우리도 착하게 살자'는 도덕주의로 끝나지 않게 해요. 나눔의 뿌리가 우리가 먼저 받은 은혜라는 걸 짚어야 해요.

방향 둘. 짐을 나누는 게 아니라 짐을 지는 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2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짐을 서로 지라'는 남는 것을 나누라는 말이 아니라 남의 무게를 내 어깨에 얹으라는 말이에요. 월급이 나오지 않는 달에도 자리를 지킨 약사들의 이야기가 그 무게를 보여줘요. 청년들에게 봉사를 권할 때 이 구분이 특히 중요해요.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는 말과, 여유가 없는데도 진다는 말은 다른 문장이니까요.

⚠️ 함정. 교회 밖 사람들의 선행을 교회 자랑거리로 가져다 쓰지 않게 해요.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인용해요.

방향 셋.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태복음 25:34-40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왕은 이 목록 끝에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해요. 소년소녀가장에게 약을 건네고 실직 가정의 약값을 깎아 준 손을, 본문이 말하는 그 자리에 놓고 읽는 방향이에요.

⚠️ 함정. 이 목록을 봉사 실적표로 바꾸지 않게 해요. 본문 속 의인들은 자기가 언제 그렇게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어요.

이번 주 강단에서 물어볼 문장은 하나예요. 우리 부서의 나눔은 지금 누구의 결심 위에 서 있나요.


🤖 아래는 '설교 스페이스'가 이 방향으로 뽑은 AI 초안이에요. 검증된 주해와 본문 위에서 생성했지만, 강단에 서기 전 목회자의 손질을 전제한 초안입니다. 그대로 읽는 원고가 아니라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는 출발점이에요. 당신의 본문·부서·문체에 맞춘 원고는 설교 스페이스에서 만들 수 있어요.

[AI 초안 예시] 장년부 설교 · 사도행전 2:44-47

은혜가 함께 사는 교회

서론

퇴근하고 식탁에 앉았는데 휴대전화에 자녀의 필요한 돈, 부모님의 병원비, 직장에서 해결하지 못한 일이 한꺼번에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하루를 버티는 것도 벅찬데 다른 사람의 사정까지 마음에 담을 여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배드릴 때는 은혜가 가득한데, 생활비를 쓰고 가족을 대하고 이웃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그 은혜가 이어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서울 구로구에 우리네약국이 있습니다. 이 약국은 번 돈을 동네에 돌려줍니다. 35년 동안요. 운영비를 빼고 남은 수익을 지역 주민의 건강과 복지에 쓰는 일을 창립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소년소녀가장에게 약을 건네고, 장애인 치과 진료를 돕고, 실직 가정의 의료비를 덜어 주었습니다. 월급이 나오지 않던 때에도 약사들은 그 자리를 지켰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러면서도 곧 자기 형편을 생각합니다. ‘나는 내 가정도 책임지기 벅찬데, 어떻게 다른 사람까지 품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생기지요.

오늘 본문 앞에서 예루살렘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주께로 돌아왔고, 성령께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제 그 사람들은 같은 예배 자리에 모인 사람으로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절부터 47절은 성령으로 태어난 교회가 받은 은혜를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 냈는지 보여 줍니다. 나눔은 특별한 행사가 끝난 뒤 잠시 꺼내는 마음일까요? 받은 은혜가 우리의 식탁과 지갑과 관계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야 할까요? 오늘 말씀 앞에서 그 길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복음은 소유를 서로의 필요 앞에 세웁니다

첫째, 복음은 소유를 서로의 필요 앞에 세웁니다. 본문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말은 “각 사람의 필요”입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어 준다는 뜻보다, 사람마다 다른 형편을 살폈다는 뜻이 더 분명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먹을 것이 필요하고, 어떤 이에게는 머물 곳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공동체는 필요를 보면서도 “저 사람의 형편은 저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재산과 소유를 팔아”라는 말씀을 읽으면 초대교회가 모든 재산을 한꺼번에 없애고 공동으로 관리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본문의 흐름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에 필요가 생길 때마다 가진 사람이 자기 재산이나 소유를 내놓았습니다. 소유 자체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소유가 사람을 움켜쥐고 있지 못하게 했습니다. 필요한 사람 앞에서 내 것을 열어 놓는 사랑이 공동체의 생활이 되었습니다. 한 번 마음이 뜨거워져 큰돈을 내놓은 사건이 이어진 것이 아닙니다. 필요가 생길 때마다 나눔이 반복되었습니다. 나눔이 삶의 구조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이 넉넉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묶으셨습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거저 베푸신 선물입니다.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은 곁에 있는 이의 무게를 자기 삶과 상관없는 일로 밀어내지 않습니다. 가령 한 교우가 갑자기 수입을 잃고도 가족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먼저 형편을 캐묻고 책임을 따지는 데서 멈추면 공동체는 모임으로 남습니다. 필요한 만큼 함께 살피고 가진 사람이 조금씩 자리를 내어 주면, 교회는 한 가족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큰 것을 가진 사람만 나누는 것도 아닙니다. 시간과 관심을 내어 주고, 부담을 함께 지며, 도움을 청하는 이의 손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도 이 사랑은 나타납니다.

내 것을 쥐고만 있던 손을 펴서 하나님의 은혜가 곁으로 흐르게 합시다. 상대의 형편을 섣불리 재단하기보다 그가 짊어진 짐을 함께 나누어 지는 것이 복음의 길입니다. 성령께서 세우신 공동체는 가진 것이 많은 공동체가 아니라, 받은 것을 필요 앞에 내어놓는 공동체입니다. 그 자리에서 복음은 말로 머물지 않고 서로의 삶을 살립니다.

그 사랑은 형편이 드러난 사람에게만 향하지 않습니다. 말없이 자리를 지키는 사람, 도움을 청하기 어려워하는 사람,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마음이 지친 사람도 살핍니다. 교회 안에서 “괜찮습니다”라는 말만 듣고 돌아서지 말고, 서로의 삶을 천천히 알아가야 합니다. 도움을 받는 자리도 은혜의 자리입니다. 누군가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일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공동체를 믿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진 사람은 나눔으로 섬기고, 부족한 사람은 숨지 않고 도움을 청하면서 함께 살아갑니다. 그때 교회는 각자 버티는 사람의 모임을 넘어 한 몸으로 움직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소그룹과 교회 안에 이런 나눔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의 손을 외면하지 말고, 닫혔던 마음의 빗장을 풀어 받은 사랑을 일상에서 실천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그런 공동체 가운데 기쁨을 주시고, 복음을 믿고 돌아오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십니다.

2. 복음은 예배와 식탁을 하나로 잇습니다

그 공동체의 모습은 모이는 시간에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라고 기록합니다. 성전에서는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집에서는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말씀과 기도로 주님을 바라보고, 다른 쪽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하루의 형편을 나누었습니다. 예배와 생활이 서로 다른 영역으로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날마다”라는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특별한 절기나 행사가 있을 때만 모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함께 하나님을 찾고 함께 살아갔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의 믿음은 성전 안에서만 뜨거웠다가 집에 돌아가면 식어 버리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사람이 집에서도 같은 주님을 섬겼고, 집에서 나눈 사랑이 다시 공동체의 예배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식사는 배를 채우는 자리만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음을 열고, 한 주간의 무게를 함께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말합니다. 기쁨은 형편이 늘 넉넉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이 누리는 마음의 열매입니다. 순전한 마음은 계산을 내려놓은 깨끗한 마음입니다. 누가 더 많이 냈는지, 누가 더 자주 섬겼는지 따지며 관계의 장부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함께 있는 사람을 손님처럼 대하지 않고 가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이렇게 빚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 연륜도 이런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오래 믿었다는 말이 사람을 쉽게 판단하는 눈으로 나타나면 주변의 마음은 닫힙니다. 반대로 먼저 듣고, 자리를 내어 주고, 서툰 믿음을 기다려 주는 온기로 나타나면 한 사람이 교회 안에 머물 힘을 얻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말없이 남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일, 가족의 말이 끝나기 전에 답을 정하지 않는 일, 오랜 교우와 새로 온 교우가 함께 어울리게 하는 일이 예배의 열매가 됩니다.

예배에서 받은 은혜가 관계의 말투와 집의 분위기까지 바꾸어 놓습니다. 주님은 성전에서 드린 찬송을 집으로 가져가게 하시고, 집에서 배운 사랑을 다시 예배의 자리로 모으십니다. 우리의 예배와 일상이 주님 안에서 하나로 이어지고, 가정과 교회가 기쁨과 순전한 마음을 회복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소망은 우리의 힘으로 꾸미는 분위기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을 열어 주실 때 가능합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은 그들이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전합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삶과 사람에게 사랑받는 공동체의 모습이 함께 나타났습니다. 교회가 복음을 말할 때 그 말이 식탁의 환대와 서로를 품는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누군가 예배 뒤에 혼자 돌아가지 않도록 곁을 내어 주고, 형편이 어려운 성도의 필요를 모른 척하지 않으며, 가정에서 서로를 귀하게 대하는 모습이 복음을 보여 줍니다. 거창한 계획보다 지금 곁에 있는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기도의 자리 같은 작은 순종이 복음을 증명합니다. 그런 공동체를 주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여시고 복음을 받아들일 이를 날마다 더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3. 복음은 찬미의 삶으로 이웃을 부르고 주께서 더하십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은 초대교회의 삶을 이렇게 맺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여기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그들은 사람의 시선을 끌려고 자신을 꾸미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기뻐하고, 그 기쁨을 공동체 안에서 함께 누렸습니다. 그 모습이 이웃의 눈에 보였습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는 말은 교회가 인기 경쟁에서 이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의 박수를 얻기 위해 믿음을 포장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눈에도 그들의 삶이 믿을 만하게 보였다는 뜻입니다. 말과 행동이 따로 놀지 않았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입술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예배당에서는 사랑을 말하면서 일터에서는 약한 사람을 밀어내면 이웃은 복음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합니다. 반대로 손해를 조금 감수하더라도 맡은 일을 정직하게 하고, 자기 공을 앞세울 자리에서 동료의 수고를 인정하면 사람들은 그 삶에서 다른 힘을 느낍니다. “저 사람은 무엇을 믿기에 저렇게 사는가?” 하는 물음이 생깁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자녀가 부모의 신앙을 배우는 자리는 주일 예배의 한 시간에 머물지 않습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날에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로 집안을 채우지 않고, 실수한 가족을 몰아세우기보다 다시 일어설 자리를 내어줄 때 믿음의 모습이 전해집니다. 칭찬받으려는 계산이 사라진 자리에서 찬미가 시작됩니다. 찬미는 노래를 부르는 시간에만 머물지 않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태도로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 뒤 사람의 노력으로 결론을 맺지 않습니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교회의 성장은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마음을 억지로 움직일 수 없고, 열매를 서둘러 만들어 낼 수도 없습니다. 맡겨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복음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갈 때, 주님께서 그 삶을 사용하십니다. 한 사람의 진실한 태도가 가족의 마음을 열고, 한 공동체의 따뜻한 모습이 이웃에게 질문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섬김을 자랑으로 바꾸지 말고, 결과가 더디다고 낙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삶을 충실히 이어 갈 때 주께서 친히 사람을 부르시고 자기 교회를 자라게 하십니다. 우리의 이름이 드러나는 자리보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보이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및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행전 2장의 교회는 받은 은혜를 자기 마음속에만 간직하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필요를 살피고, 함께 모여 예배하고, 평범한 날의 삶을 나누며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성령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묶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교회는 같은 자리에 앉는 사람의 모임을 넘어 서로의 삶을 책임 있게 바라보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마음이 굳어 누군가의 사정을 쉽게 판단했던 자리에는 은혜가 다시 필요합니다. 내 형편만 생각하다 곁을 돌아볼 힘을 잃은 자리에는 주님이 주시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도움을 받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움을 건네는 일을 생색내지 않으며, 서로를 주님의 손에 맡긴 채 함께 걸어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받은 것이 크고 많아서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자격 없는 우리를 품으신 주님의 은혜가 먼저 있었기에, 이제 우리의 삶도 누군가를 품는 자리로 열리는 것입니다.

퇴근한 뒤 식탁 앞에 앉으면 하루의 걱정이 한꺼번에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도 우리의 믿음은 예배당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가족을 대하는 말과 교우를 바라보는 눈과 일터에서 맡은 일을 감당하는 태도에 은혜가 묻어납니다. 그 작은 흔적을 주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열고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니, 열매를 서둘러 만들어 내려고 애쓰기보다 오늘 맡기신 사랑을 살아냅시다. 오랜 시간 묵묵히 이웃의 곁을 지켰던 약국의 발걸음처럼, 우리 또한 받은 은혜를 삶의 자리마다 넉넉히 나누는 공동체로 빚어져 갑시다. 주께서 우리 가정과 교회와 일터를 통해 하나님을 찬미하게 하시고,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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