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짐을 지던 아버지, 갈라디아서 6장 설교

설교 스페이스

'안녕, 피터팬', 공동체가 함께 진 짐

이 글이 출발한 요즘 트렌드예요

기대여명 6개월을 선고받은 간암 말기 아버지 전경철 씨가, 홀로 키운 중증 자폐 아들이 머물 곳을 찾아 전국 시설을 찾았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그가 브런치에 남긴 사연이 방송으로 알려지며 8000만 원가량의 후원이 모였고, 책 출간과 발달장애인 생활공동체 '피터팬 재단' 설립 움직임으로 이어졌습니다.

출처: 뉴닉 데일리

간암 말기, 기대여명 6개월을 선고받은 아버지 전경철 씨가 홀로 키운 중증 자폐 아들이 머물 곳을 찾아 전국의 시설을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번번이 거절당했대요. 브런치에 남긴 사연이 방송을 타면서 8000만 원가량의 후원이 모였고, 책 출간과 발달장애인 생활공동체 '피터팬 재단' 설립 움직임까지 이어졌고요.

표면 아래를 보면

이 소식이 오래 남은 자리는 모인 금액이 아니었어요. '번번이 거절당했다'는 문장 쪽이었죠. 거절한 시설들이 유독 매정해서가 아니에요. 중증 발달장애인을 받을 여력이 그만큼 없다는 뜻이고, 그래서 그 짐은 하루도 나뉘지 않은 채 아버지 한 사람 어깨에 계속 얹혀 있었어요. 우리가 돌봄을 다루는 기본값이 대체로 그래요. 누군가 한 명이 끝까지 지고, 그 사람이 쓰러진 다음에야 문제가 되죠.

교육부서에도 같은 구조가 있어요. 겉도는 아이 하나를 몇 년째 붙들고 있는 교사, 늦은 밤 상담 전화를 혼자 받아 온 부교역자처럼요. 그래서 이번에 실제로 벌어진 사건은 후원이 아니라 분산이에요. 혼자 지던 짐이 처음으로 나뉜 거예요. 사람들이 반응한 건 누군가의 착한 마음이 아니라 그 장면이었을 거고요.

그래서, 설교로 푼다면

방향 하나. 짐은 없애는 게 아니라 나눠 지는 것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2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명령이 '없애 주라'가 아니라 '서로 지라'인 게 눈에 걸려요. 후원한 사람들이 한 일도 아들의 장애를 없앤 게 아니라 아버지 옆에 자기 어깨를 댄 거였고요. 본문은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되는 자리를 뜨거운 마음이 아니라 무게를 나눠 든 자세에 둡니다. 청년부 소그룹에서 그대로 물어도 되는 질문이 여기서 나와요. 지금 우리 중에 혼자 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 함정. 후원 미담을 '착한 사람들 이야기'로 닫지 않게 해요. 출발점은 우리의 선의가 아니라 우리가 먼저 받은 긍휼이에요.

방향 둘. 그 닫힌 문 앞에 주님이 서 계셨어요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40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같은 장면에서 예수님은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라는 말로 심판대를 설명하셨어요. 영접의 대상은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받아 줄 곳이 없어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전국의 시설을 돌다 돌아선 그 부자가 정확히 그 자리에 있었고요. 돌봄이 여유 있는 사람의 선택 과목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자리라는 게 본문의 선언이에요.

⚠️ 함정. 타인의 실제 고통을 감동 소재로만 소비하지 않게 해요. 예화로 옮길 때도 그 가정은 우리 설교의 재료가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이웃이에요.

방향 셋. 경건은 누가 돌봄받는지로 확인돼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서 1:27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야고보는 경건을 감정의 온도나 예배 참석 횟수로 재지 않아요. 그 사회에서 기댈 데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로 재죠. 아버지가 떠난 뒤 홀로 남을 아들은 본문이 가리키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어요. 우리 부서의 경건 훈련 목록에 이 질문이 들어 있는지 한 번쯤 확인해 볼 만해요.

⚠️ 함정. 돌봄을 도덕적 성취로 세우지 않게 해요. 본문의 경건은 자격 증명이 아니라 먼저 돌봄을 받은 사람이 사는 방식이에요.

전경철 씨가 찾아다닌 건 후원금이 아니라 아들이 살아갈 자리였어요. 강단이 붙잡을 지점도 8000만 원이 모였다는 결말이 아니라, 아직 나뉘지 않은 짐이 우리 곁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 쪽이고요.


🤖 아래는 '설교 스페이스'가 이 방향으로 뽑은 AI 초안이에요. 검증된 주해와 본문 위에서 생성했지만, 강단에 서기 전 목회자의 손질을 전제한 초안입니다. 그대로 읽는 원고가 아니라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는 출발점이에요. 당신의 본문·부서·문체에 맞춘 원고는 설교 스페이스에서 만들 수 있어요.

[AI 초안 예시] 장년부 설교 · 갈라디아서 6:2

함께 지는 짐

서론

자녀의 문제를 마음에 품고 직장에서는 책임을 다하면서도, 가족과 교회 앞에서는 괜찮은 얼굴로 지낼 때가 있습니다. 속으로는 “이 일을 누구에게 말할까, 나까지 무너지면 어떻게 하지?” 묻지만, 도움을 청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힘들어 보여도 괜히 상처를 건드릴까 싶어 모른 척 지나갑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혼자 견디는 데 익숙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의 말씀 앞에 섭니다. ‘안녕, 피터팬’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대여명 6개월을 선고받은 아버지 전경철 씨가 홀로 키운 중증 자폐 아들이 머물 곳을 찾았지만, 여러 시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한 아버지가 아들의 앞날과 자신의 죽음을 함께 안고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연이 알려진 뒤 낯선 사람들이 힘을 보탰고, 아버지와 아들이 감당하던 무게를 함께 나누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이 이야기를 감동적인 미담으로만 듣고 지나갈 수는 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주님은 지극히 작은 사람에게 한 일이 곧 주님께 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면받기 쉬운 사람의 곁에 서는 일은 주님을 대하는 일과 맞닿아 있습니다. 교회는 힘 있는 사람만 모여 자기 몫을 잘 해내는 곳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삶이 기울 때 곁에 서고, 한 사람이 감당하던 무게를 함께 들어 주는 곳입니다.

오늘 갈라디아서 6장 2절에서 바울은 바로 그 공동체의 모습을 우리 앞에 펼쳐 보입니다. 우리도 주님께 긍휼을 입은 사람입니다. 먼저 품어 주신 은혜가 있기에 곁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제 혼자 버티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서로의 삶을 살피는 교회로 함께 자라가시길 바랍니다.

1.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여는 공동체가 되십시오

첫째,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여는 공동체가 되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한 사람을 따로 불러 짐을 지라고 하지 않고 “너희가”라고 말합니다. 교회 전체를 부르는 말씀입니다. 목회자 몇 사람이나 마음이 넉넉한 몇 가정의 몫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부르심 안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짐을 서로 지라”고 합니다. 여기서 “서로”라는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교회 안에는 늘 돕는 사람만 있고 도움을 받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제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만, 내일은 그 사람의 기도가 제 마음을 붙들 수 있습니다. 한때 자녀의 진로를 두고 기도하던 사람이 이제는 다른 가정의 자녀를 위해 함께 울 수 있고, 직장에서 책임을 감당하던 사람이 어느 날에는 동료 성도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한쪽에서 베풀고 다른 쪽에서 받기만 하는 곳으로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서로 돌보고 서로 기대는 몸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형편을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고, 교회에서는 믿음이 약해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다녀온 일도, 자녀 때문에 잠 못 이룬 밤도, 마음이 무너진 까닭도 괜찮은 얼굴 뒤에 감춰 둡니다. 도움을 구하는 일은 자존심을 굽히는 게 아니라, 서로의 삶을 잇는 통로를 여는 일입니다. 감추어진 짐은 곪아가지만, 드러낸 짐은 공동체의 기도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떠올려 보십시오. 식사 자리에서 한 사람이 계속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자기 이야기는 꺼내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가 평안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말할 힘조차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서둘러 해답을 내놓는 일이 아닙니다. 끝까지 들어 주는 귀, 함께 있어 주는 마음이 먼저입니다. 반대로 내가 말을 꺼낼 차례도 있습니다. 도움을 받는 자리에 앉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서로의 필요를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부르셨습니다.

“너희가”라는 부르심 앞에서 누구도 구경꾼으로 남을 수 없습니다. 넉넉한 날에는 곁을 내어 주고, 힘이 빠진 날에는 그 곁에 기대면 됩니다. 한 사람의 약함이 공동체에서 숨겨지지 않고 안전하게 드러날 때, 교회는 서로를 살리는 자리로 자랍니다. 우리의 마음을 여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주셨기에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 보일 수 있고, 서로의 손길을 은혜로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주고받는 사랑이 공동체의 문을 열고, 그 열린 자리에서 교회는 하나의 몸으로 서게 됩니다.

2. 약한 사람의 곁을 온유하게 지키십시오

바울은 6장 2절에서 짐을 서로 지라고 말하기에 앞서, 죄에 빠진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먼저 보여 줍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라디아서 6:1)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로잡는다는 말에는 무너진 사람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잘못을 들추어내고 사람을 몰아세우는 일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다시 하나님 앞에 서도록 돕는 일이 목적입니다.

사람의 실수가 드러나면 마음이 먼저 굳어질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누군가 중요한 일을 놓쳤을 때, 왜 그렇게 했는지 묻기 전에 책임부터 따집니다. 가정에서도 자녀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그동안의 실망이 한꺼번에 올라와 날카로운 말을 건넵니다. 물론 잘못은 분명히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 번의 실수를 그 사람의 전부로 규정하면 회복할 길이 막힙니다. 바울은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으라고 합니다. 온유함에는 잘못을 똑바로 보는 눈과 사람을 살리는 말이 함께 있습니다. 필요한 말을 건네되 상대를 내려다보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설 자리를 남겨 둡니다.

그런데 이 일을 누가 맡습니까? 바울은 “신령한 너희”라고 부릅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공동체가 이 일을 맡습니다. 온유함은 성격이 부드러운 사람의 장점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맺으시는 열매입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서 여러 번 넘어졌고, 주님은 우리의 허물을 아시면서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래 참으시고 다시 돌아올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긍휼을 입은 사람이 곁의 약함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집니다.

누군가의 실패를 보았을 때 사실 확인만 끝내고 관계를 끊어 버리면 그 사람은 자신의 잘못과 외로움을 함께 떠안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회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필요한 도움을 건네고, 변화가 더디더라도 성급히 낙인찍지 않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 자신을 살펴보아”라고 덧붙입니다. 다른 사람의 약함을 대하는 순간 우리 자신의 연약함도 주님 앞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다시 세우는 손길을 내밀 때, 그 손을 붙드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교회는 실수 없는 사람의 모임이 아니라, 주님의 오래 참으심 안에서 무너진 사람이 다시 서는 자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렇게 품으셨으니, 우리도 온유한 마음으로 회복을 기다리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의 헌신입니다.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이의 곁에 앉아 묵묵히 시간을 공유하고, 그가 다시 하나님을 바라볼 때까지 인내하는 것이 사랑의 실체입니다. 때로는 조언보다 함께 있어 주는 일이 먼저입니다.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 서둘러 판단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 보십시오. 필요한 권면은 하되 그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지 마십시오. 타인의 고난을 우리가 대신 짊어질 수는 없어도, 그가 홀로 고립되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일은 가능합니다. 회복은 혼자만의 분투가 아니라,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질 때 비로소 시작되는 공동체의 은혜입니다. 한 사람을 향한 세심한 눈길과 끈기 있는 중보가 죽어가는 영혼을 일으킵니다. 오늘 당신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있는 이들을 외면하지 말고,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의 곁을 지켜내십시오.

3.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십시오

3.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십시오

본문은 “그리하여”라고 이어 갑니다. 서로의 짐을 지는 삶과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는 일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서로의 무게를 살피고 나누는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의 법이 살아 움직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마음속 따뜻한 감정에 머물지 않습니다. 내 시간과 수고를 내어 주고, 내 계획을 조금 늦추며, 다른 사람의 형편을 내 일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곧 주님이 우리를 대하셨던 그 사랑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받은 용서와 긍휼이 공동체 안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이 법을 완성하는 길입니다. 주님은 사랑을 말씀으로만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다. 죄로 멀어진 우리를 십자가에서 품으셨고, 우리가 주님께 나아갈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은혜를 입었다는 말이 여기서 살아납니다. 받을 자격을 먼저 갖춘 사람에게 주신 보상이 아니라, 아무것도 내세울 수 없던 우리에게 주님이 먼저 베푸신 긍휼입니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 곁에 있는 이의 필요를 외면하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병원 원무과 앞에서 서류를 들고 한참 서 있는 보호자를 떠올려 보십시오. 치료비와 퇴원 절차를 혼자 감당하느라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곤란해하는 모습입니다. 그때 누군가 옆에 앉아 서류를 함께 살피고, 필요한 곳을 알려 주고, 기다리는 시간을 나누어 준다면 큰 문제가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아도 그 사람은 혼자 남겨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이런 데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상대의 사정을 다 해결할 능력이 없어도, 그 곁에 머물며 내 수고를 나누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보여 줄 그리스도의 모습도 거기서 드러납니다.

사랑은 손익을 따진 뒤 움직이지 않습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저 사람도 이만큼 해야 한다고 계산하면 사랑의 자리는 금세 거래의 자리가 됩니다. 주님께 받은 긍휼을 기억할 때 마음의 셈법이 달라집니다. 나도 누군가의 기도와 기다림과 용서로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서로의 짐을 지는 일은 우리의 착함을 증명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베푸신 사랑이 우리 안에서 흘러나오는 일입니다. 그 사랑이 가정과 교회에 머물고, 필요한 곳으로 이어질 때 그리스도의 법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품으신 긍휼이 공동체를 움직이는 힘이며, 그 사랑으로 교회는 세상 앞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서게 됩니다.

결론 및 적용

이제 말씀을 한곳에 모아 봅니다. 바울은 교회가 서로의 사정을 알아보며 마음을 여는 공동체가 되길 바라십니다. 누군가의 약함이 드러났을 때 먼저 판단하지 않고 온유하게 곁을 지키며, 사랑을 마음속 생각으로만 남겨 두지 않고 수고와 시간으로 나타내는 교회입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질서가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의 긍휼을 입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부족함과 넘어짐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밀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 은혜가 우리를 붙들기에 다른 사람의 무게 앞에서도 마음을 닫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혼자 견디는 일이 익숙해지면 도움을 청하는 사람도, 손을 내미는 사람도 점점 사라집니다. 그러면 한 사람의 삶은 고립되고 공동체의 마음도 굳어집니다. 주님 안에서는 도움을 받는 자리도 은혜의 자리이며, 누군가를 돕는 수고도 주님께 드리는 사랑이 됩니다. 어느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맡기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곁을 내어 주며 함께 살아가는 교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때 갈라디아서 6장 2절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실제가 됩니다. ‘안녕, 피터팬’에서 낯선 이들이 한 아버지와 아들의 무게를 함께 품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 받은 사랑으로 곁의 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공동체로 자라갑시다.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보이고, 교회는 세상 가운데 주님의 몸으로 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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