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를 때 드러나는 믿음의 뿌리, 예레미야 17장 설교
설교 스페이스
경남 지역의 가뭄이 심각해지고 있어요. 6월 말부터 이어진 마른장마와 폭염으로 곳곳의 농업용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냈고, 정부는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해 소방공무원 400명을 경남에 배치했어요. 경상남도도 긴급 예산을 확보해 대응 중이고요.
표면 아래를 보면
이 장면의 무게는 물이 사라졌다는 데만 있지 않아요. 물이 차 있을 때는 저수지의 깊이가 보이지 않다가, 마르고 나서야 바닥이 어디였는지 드러난다는 데 있어요.
교육부서에서 이 문장은 낯설지 않을 거예요. 수련회 마지막 밤이나 찬양 분위기가 좋은 주일에는 모두가 비슷해 보여요. 그런데 수시가 다 떨어진 주, 오래 붙어 다니던 친구와 틀어진 주, 집안 사정이 흔들린 주에 예배당 자리가 하나둘 빕니다. 어떤 학생은 그 주에 오히려 더 일찍 와서 앉아 있고요. 같은 사건이 어떤 아이에게는 이유가 되고 어떤 아이에게는 자리가 되는 셈이에요.
그래서 마름은 신앙의 실패가 아니라 신앙의 노출이에요. 가뭄은 없던 문제를 만들지 않아요. 있던 깊이를 보이게 할 뿐이에요. 이번 주 강단이 할 일은 마름을 없애 주겠다고 약속하는 게 아니라, 마른 자리에서도 물을 대고 있는 뿌리를 보여 주는 일에 가까워요.
그래서, 설교로 푼다면
방향 하나. 비가 올 때는 두 나무가 같아 보여요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예레미야 17:7-8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본문은 사막의 떨기나무와 물 가에 심긴 나무를 나란히 둬요. 중요한 건 두 나무가 비 오는 해에는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갈리는 시점은 가무는 해예요. 뿌리를 어디에 대고 있느냐는 형편이 좋을 때 물을 수 없는 질문이라는 뜻이죠. 지금 잘 지내는 학생에게도 미리 건넬 수 있는 본문이에요.
⚠️ 함정. 재난을 하나님의 징벌로 해석하지 않게 조심해요. 실제 피해를 겪는 이들에게는 이중의 상처가 돼요.
방향 둘. 마른 땅에서 부르는 노래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시편 63:1-3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다윗은 마름을 없애 달라고 하기 전에, 그 마름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요. 순서가 뒤집혀 있죠. 지금 삶이 말라 있는 청년에게 이 노래는 한 가지를 말해 줘요. 마름이 곧 하나님이 떠나신 증거는 아니라는 것이요. 기도 응답이 없는 계절을 신앙의 결격 사유로 여기는 학생이 앉아 있다면 이 본문이 그 자리를 풀어 줄 수 있어요.
⚠️ 함정. 가뭄을 '영적 침체'의 은유로만 소비하고 실제 피해자를 지나치지 않게 해요.
성경에서 물은 늘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자원이었어요. 설교를 닫을 때 경남의 농민과 지역을 위한 기도와 나눔으로 이어 주면, 비유가 현실에 발을 딛습니다.
🤖 아래는 '설교 스페이스'가 이 방향으로 뽑은 AI 초안이에요. 검증된 주해와 본문 위에서 생성했지만, 강단에 서기 전 목회자의 손질을 전제한 초안입니다. 그대로 읽는 원고가 아니라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는 출발점이에요. 당신의 본문·부서·문체에 맞춘 원고는 설교 스페이스에서 만들 수 있어요.
[AI 초안 예시] 장년부 설교 · 예레미야 17:5-8
마를 때 드러나는 뿌리
서론
경남의 저수지들이 바닥을 드러냈다는 소식이 있었지요. 물이 가득할 때는 저수지가 얼마나 깊은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물이 빠지고 나서야 감춰져 있던 바닥이 나타납니다. 가뭄을 견디는 농민의 마음은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이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필요한 도움을 얻게 해 주시길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가뭄을 피해 입은 이웃의 현실을 가볍게 비유로만 다룰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저수지의 바닥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삶도 돌아보게 됩니다. 형편이 괜찮을 때는 내가 무엇을 의지하는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자녀가 별일 없이 지내고 직장도 안정되어 있으면 마음이 어디에 기대고 있는지 모른 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자녀의 문제가 생기고, 일터의 책임이 무거워지고, 건강과 노후의 염려가 한꺼번에 밀려오면 마음 깊은 곳이 드러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들고 있습니까? 사람입니까, 내 경험과 힘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이런 물음이 우리 앞에 놓입니다.
예레미야 17장은 그 모습을 두 나무로 보여 줍니다. 물기 없는 땅에서 겨우 살아가는 떨기나무가 있고, 물가에 심겨 뿌리를 강변으로 뻗은 나무가 있습니다. 비가 내리고 형편이 넉넉할 때는 두 나무가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더위가 오고 땅이 마를 때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정죄하려고 세운 거울이 아닙니다. 삶이 마르는 때에 마음을 어디로 돌려야 하는지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제 예레미야가 말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따라가며, 우리의 마음이 기대고 있는 곳을 주님 앞에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삶이 마를 때 무엇이 우리의 버팀목이 됩니까?
본문은 먼저 사람을 의지하는 마음의 방향을 짚습니다.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입니다. 사람의 도움을 받는 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될 수 있습니다. 가족의 손을 붙들고, 동료의 도움을 받고, 필요한 때에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 일은 지혜로운 삶입니다. 문제는 사람의 도움을 감사히 받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과 자기 힘을 삶의 가장 깊은 곳에 두고, 하나님 없이도 내 인생을 붙들 수 있다고 여기는 마음에 있습니다. 그때 마음은 여호와에게서 돌아섭니다.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는다’는 말은 자기 능력과 경험을 마지막 안전망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오래 일해 온 경력, 모아 둔 재산, 자녀의 형편, 내 판단과 인맥이 나를 지켜 줄 것이라고 마음을 거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그것이 든든해 보입니다. 그러나 가정에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기고, 병원 대기실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직장에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마주하면 마음이 어디에 기대고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때 사람의 도움은 귀하지만, 사람은 내 영혼의 무게까지 대신 질 수 없습니다. 자기 힘도 한계 앞에서 멈춥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사막의 떨기나무”에 비유하십니다. 이 나무는 물이 넉넉한 곳에서 풍성하게 자라는 나무가 아닙니다. 메마르고 거친 땅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이어 가는 작은 나무입니다. 겉으로는 서 있지만 뿌리가 닿을 물이 없으니 생기를 오래 간직하지 못합니다. 예레미야는 그 사람이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의 메마른 땅에 산다고 말합니다. 눈앞의 어려움이 앞날을 바라보는 마음까지 삼켜 버린다는 뜻입니다. 형편이 마르기 전에 소망이 먼저 마릅니다.
여기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가뭄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정죄하는 말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재난을 겪는 이의 믿음을 함부로 재단할 근거가 본문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이 말씀은 삶의 근원을 하나님에게서 끊고 사람과 자기 힘에 마음을 건 길이 결국 생명을 잃게 한다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의지할 대상을 잘못 두면 가진 것이 많아도 속은 메마를 수 있습니다.
삶의 짐이 버거울 때 사람의 손길을 거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도움을 통로로 삼아 하나님께 시선을 옮기십시오.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주님께서 당신의 짐을 함께 지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의 손은 때로 우리를 돕지만, 생명을 지탱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난 사람의 길은 메마름으로 기울고, 하나님께 마음을 둔 사람에게는 다시 소망을 바라볼 길이 열립니다.
그 소망은 형편이 다 풀린 뒤에 생기는 감정이 아닙니다. 물가에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께 붙어 있을 때 자랍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뿌리는 땅속에 있어 평소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위가 오고 비가 그쳐도 나무를 살립니다. 우리의 기도와 말씀 묵상도 그렇습니다. 당장 문제가 사라지지 않아도 하나님께 마음을 두게 하고 흔들리는 날에 다시 일어설 힘을 줍니다. 불안이 엄습할 때 습관적으로 대안을 찾기보다 먼저 주님 앞에 머무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임을 기억하며, 내 손의 소유가 아닌 주님의 신실하심에 마음의 뿌리를 내리십시오. 가뭄 속에서도 뿌리는 물을 찾고 잎은 마르지 않으며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우리의 버팀목을 살펴봅시다. 마음을 주님께 돌리고 그분 안에 머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메마른 자리에서도 생명을 이어 가게 하십니다.
2. 메마른 삶에서 복의 길은 어디로 이어집니까?
메마른 삶에서 복의 길은 어디로 이어집니까? 예레미야 17장 7절은 형편의 변화보다 먼저 신뢰의 방향을 보여 줍니다.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여기에는 같은 뜻의 말이 두 번 이어집니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입니다. 한순간 어려울 때만 하나님을 찾는 태도가 아닙니다. 삶을 결정하고 견디는 자리에서 여호와께 기대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붙들고 살아갈지 매일 선택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입니다.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전할 때 유다 백성은 나라의 안전을 사람의 힘과 눈에 보이는 조건에서 찾았습니다. 주변 나라와의 관계를 계산하고 자기 힘으로 앞날을 지키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상황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를 의지하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삶이 흔들리는 순간에는 형편을 분석하는 일이 급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그보다 깊은 곳을 살핍니다. 내 마음이 어디에 기대고 있는지, 무엇이 무너지면 나도 함께 무너질 것처럼 느끼는지 묻습니다.
노후를 준비하는 분의 책상 위에 연금과 저축을 적은 계획표가 놓여 있는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자녀의 형편과 건강 문제까지 계산하다 보면 숫자가 든든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일은 지혜롭고 필요한 일입니다. 다만 그 숫자가 내일을 보장한다고 믿는 순간, 계획표가 마음의 주인이 됩니다. 자녀의 성공도, 직장에서 쌓은 경력도, 내가 오랫동안 모은 재산도 귀한 도움은 될 수 있지만 삶 전체를 맡길 자리는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변하고 형편은 흔들리며 내가 가진 힘도 어느 날 줄어듭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우리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부르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어려움이 사라진 상태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복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붙드시고 살피시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일이 아직 풀리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마음을 세웁니다. 답을 아직 받지 못했어도 기도할 분이 계시고, 길이 보이지 않아도 말씀을 따라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받을 자격을 따져 얻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손을 내미셔서 우리를 다시 살게 하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안전을 사람의 약속이나 자기 계산에 묶어 두지 맙시다. 사람의 도움을 감사히 받되, 그 사람을 하나님 자리에 세우지 맙시다.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다하되, 내 힘이 내 인생을 끝까지 지킨다는 생각에서는 내려옵시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마른 현실보다 먼저 복의 길을 여십니다. 그 길의 첫걸음은 형편이 좋아지는 데 있지 않고, 여호와께 삶을 맡기는 믿음에 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의 모습이 8절에 나옵니다.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물가에 심긴 나무도 더위를 피하지는 못합니다. 가뭄도 만납니다. 그러나 뿌리가 물가에 닿아 있기에 마르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도 고난은 찾아옵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날도 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한다는 말은 그런 날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일입니다. 기도할 힘이 적을 때에도 하나님께 나아가고, 말씀 한 구절을 붙들며 오늘 해야 할 일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생명을 흐르게 하십니다. 잎이 시들지 않고 때가 되면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무엇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지 조용히 살펴봅시다. 손에 쥔 것을 놓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을 주신 하나님보다 더 믿지 말라는 부르심입니다. 여호와께 마음을 두십시오. 하나님께서 마른 땅에서도 우리를 살리시고 열매 맺게 하십니다.
3.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가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갑니까?
하나님께서 마른 땅에서도 우리를 살리시고 열매 맺게 하십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17장 8절은 그 생명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보여 줍니다.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라고 합니다. 나무의 뿌리는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줄기와 잎은 사람들이 바라보지만, 나무를 살리는 뿌리는 땅속에서 물을 찾아 뻗어 갑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보다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가 나무의 생명을 결정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박수나 형편의 변화가 믿음을 살려 주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그분의 말씀과 약속에 마음을 내어 맡기는 일이 생명의 길을 엽니다.
본문은 물가의 나무에게도 더위가 온다고 말합니다.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물가에 심긴 나무라고 해서 햇볕을 피하거나 가뭄을 비켜 가는 것은 아닙니다. 뜨거운 날을 그대로 맞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에게도 질병의 소식이 들리고, 자녀의 앞날이 마음을 무겁게 하며, 직장에서 감당하기 벅찬 책임이 찾아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삶의 날씨가 늘 평온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이 사라진 뒤에야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가장 뜨거운 때에도 뿌리가 닿은 곳에서 생명을 공급하십니다.
가정에 걱정거리가 생기면 식탁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온통 그 문제로 향할 때가 있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밥을 먹으면서도 아직 오지 않은 결과를 미리 두려워합니다. 그때 믿음은 걱정이 전혀 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꾸미는 일이 아닙니다. 두려운 마음을 품은 채 하나님께 가지고 가는 일입니다. “주님, 제가 이 일을 다 붙들고 있을 힘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맡길 때, 우리의 형편보다 크신 하나님께 뿌리가 닿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자기 감정만으로 삶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을 말합니다. 여기서 결실은 모든 일이 뜻대로 풀리고 원하는 성과를 얻는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생명이 가정과 일터에서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오래 참을 힘이 생기고, 무너진 관계를 함부로 포기하지 않으며, 맡겨진 일을 정직하게 감당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도 선을 행하고, 기다림 속에서도 소망을 놓지 않습니다. 열매는 자기 이름을 크게 만드는 성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살리신 생명이 흘러나오는 모습입니다.
마른 시간이 길어지면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신 것은 아닐까’ 하고 단정하기 쉽습니다. 시편 63편 1절에서 다윗은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는 마름이 있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갈망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찾았습니다. 지금의 가뭄은 하나님의 부재를 증명하지 않습니다. 뿌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명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여호와께 뿌리내린 사람은 더위 속에서도 살아 있고, 가무는 해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 생명은 형편이 허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붙드시기에 이어집니다.
결론 및 적용
인생의 가뭄은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지 드러냅니다. 사람의 손과 내 경험은 귀하지만, 그것만 붙들면 마음이 쉽게 지칩니다. 여호와께 삶을 맡길 때 하나님께서 흔들리는 마음을 붙드시고 마른 날에도 사랑과 인내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이번 주, 당신을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를 주님께 온전히 맡겨 보십시오. 아울러 메마른 땅에서 신음하는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기도로 그들의 곁을 지키며 작은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한 주가 되길 바랍니다. 물이 가득할 때는 보이지 않던 저수지 바닥이 드러나듯,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분명히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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