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코어'가 진짜 붙잡고 싶은 건 무엇일까요? 때와 오늘로 푸는 세 방향
설교 스페이스
제철 과일을 찾아 시장에 가고, 그 계절에만 여는 축제를 굳이 찾아가고, 지금 아니면 못 본다는 풍경 앞에 줄을 서요. '제철(알맞은 때)'에 '코어'를 붙인 말 '제철코어'는 특정 계절과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음식과 경험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을 가리켜요. 2026년 6월 언급량이 전월 대비 약 225% 늘었을 만큼 빠르게 번지고 있죠.
표면 아래를 보면
흥미로운 건 이 유행이 사계절이 또렷해져서가 아니라 흐려져서 커졌다는 점이에요. 캐릿과 KB의 관찰처럼, 기후 변화로 계절의 경계가 뭉개질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지금 이 계절'을 더 세게 붙잡으려 해요. 사라질 것 같으니 더 진지해지는 거죠.
그러니까 제철코어는 소비 취향 이야기라기보다 시간 감각 이야기예요. 무엇이든 언제든 살 수 있고 언제든 볼 수 있는 세계에서 자란 세대가, '한 번 지나가면 끝'인 것 앞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다잡는 장면이거든요. 그 밑에는 은근한 불안도 함께 있어요. 놓치면 어쩌지, 내 시간도 이렇게 지나가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요. '지금 아니면 못 먹는다'는 문장은 사실 음식에 대한 말이 아니라, 유한한 시간을 처음으로 실감한 사람의 말인 셈이에요. 강단에서 나무랄 유행이 아니라,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함께 물어볼 좋은 접점이에요.
그래서, 설교로 푼다면
방향 하나. 아무 때나가 아니라 그 때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전도서 3:1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전도자는 모든 일에 그 일의 때가 있다고 말해요. 제철을 찾는 감각과 놀랍도록 가까운 자리죠. 다만 방향이 반대예요. 제철코어가 때를 골라 누리는 쪽이라면, 이 본문은 때를 정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는 데서 출발해요. 내 계획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한 안에서 오늘을 읽는 눈이 여기서 열려요.
⚠️ 함정. 웰빙 소비를 예찬하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게 해요. 때를 누리자는 권유가 아니라, 때를 주관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고백이 본문의 무게예요.
방향 둘.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고보서 4:14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야고보는 인생을 안개에 비유해요. '지금 아니면 못 먹는다'는 정서가 딱 이 지점에서 성경과 만나요. 내일을 내 손에 쥐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말이니까요. 유한함을 아는 사람만이 오늘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아요.
⚠️ 함정. '인생 짧으니 즐기자'는 쾌락주의로 오독하지 않게 해요. 안개라는 비유는 실컷 누리라는 권유가 아니라, 내일을 주장하지 말라는 겸손의 초대예요.
방향 셋. 날을 세어 보는 지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편 90:12 ·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시인은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해요. 남은 날을 계산해서 불안해지려는 게 아니라, 세어 보는 그 자리에서 지혜로운 마음을 얻으려는 기도죠. 제철을 챙기는 감각이 여기까지 오면, 계절을 소비하는 취향이 오늘을 선물로 사는 태도로 바뀌어요.
⚠️ 함정. 시간의 유한함을 소비의 명분으로 삼지 않게 해요. 짧으니 더 사자가 아니라, 짧으니 더 지혜롭게 살자는 쪽으로 결론을 가져가요.
제철코어는 '지금 아니면 못 먹는다'에서 멈추지만, 오늘 본문들은 '지금이 주어졌다'에서 시작해요. 계절을 붙잡으려는 마음을 정죄하지 않고, 그 마음이 정말 찾고 있던 게 무엇인지 가리키는 설교라면 청년들의 여름이 조금 달라질 거예요.
🤖 아래는 '설교 스페이스'가 이 방향으로 뽑은 AI 초안이에요. 검증된 주해와 본문 위에서 생성했지만, 강단에 서기 전 목회자의 손질을 전제한 초안입니다. 그대로 읽는 원고가 아니라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는 출발점이에요. 당신의 본문·부서·문체에 맞춘 원고는 설교 스페이스에서 만들 수 있어요.
[AI 초안 예시] 청년부 설교 · 전도서 3:1
지금이 제철입니다
서론
요즘 '제철코어'라는 말이 유행이래요. 제철 과일, 제철 옷, 제철 여행지 — '지금 아니면 못 먹는다'는 그 마음이죠. 달콤한 딸기는 5월이 제철이고, 시원한 수박은 7월이 제철이니까요. 그런데 인생에도 제철이 있다면 어떨까요?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계절 — 취업 준비하느라 밤새는 시간, 결혼을 앞두고 기다리는 시간, 사회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이 순간. 우리는 이 계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이때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고 다음을 기다리며 지금을 견디기만 하는 건 아닐까요? 마치 5월의 딸기를 놓치고 '겨울 딸기'만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죠. 전도서 3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 이 계절도 그분이 허락하신 '제철'이라는 거예요. 독신의 때, 취업 준비의 때, 신혼의 때 — 각각의 계절에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은혜와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걸 놓치고 '다음'만 바라보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인생의 제철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셈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함께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1. 우리는 지금의 때를 놓치며 삽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삶에서는 자꾸 잊고 삽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게 아니라, '언젠가'를 향해 달려갑니다. 취업하면 제대로 살리라, 결혼하면 그때는 여유를 찾으리라, 승진하면 그때는 쉴 수 있으리라. 지금은 그저 견디는 시간, 지나가길 기다리는 시간이 됩니다. 마치 겨울 내내 봄만 기다리며 얼어 있는 나무처럼, 지금의 계절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전도자는 말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고.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바로 이 때가 있습니다. 구직의 막막함이나 홀로 남겨진 적막함, 얽히고설킨 관계의 고단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알면서도 자꾸 다음으로 넘겨 버립니다. 마치 지금 먹는 밥은 맛없고, 다음 끼니가 진짜 맛있는 식사라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오늘 하루를 돌아보십시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계절을 '언젠가'를 위한 대기실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나님이 지금 여기서 주시는 은혜를, 이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그 선물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지난 일주일 동안 얼마나 많은 순간을 '그냥 지나가는 시간'으로 살았습니까? 출근길 지하철에서, 점심시간에, 아이 재우느라 지친 저녁에. 그 시간들 속에 하나님이 주신 작은 기쁨이 있었는데도 우리는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부엌, 아이가 건네는 별것 아닌 장난, 동료와 나눈 짧은 위로의 말. 그게 바로 하나님이 지금 이 계절에 허락하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 나은 때'만 바라느라 눈앞의 선물을 받지 못합니다. 마치 생일 선물을 받아 놓고도 뜯지 않고 서랍에 넣어둔 채 '다음에' 하며 미루는 것과 같습니다. 전도자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에 때를 두셨다고. 슬픔은 위로를, 기다림은 인내를, 고난은 주님을 향한 간절함을 빚어내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이 계절을 건너뛰고 다음 계절로 가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오히려 지금 누릴 복을 가로막습니다. 오늘 하루, 단 하루만이라도 '지금'에 집중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 순간에 나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 보십시오.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내가 기다리던 '언젠가'는 사실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2. 모든 때는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전도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열네 가지 대립적인 상황을 하나씩 열거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고. 이 목록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기쁜 일만 있는 게 아니고, 슬픈 일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모든 순간이 다 때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내 삶에서 '때가 아닌 것 같은' 상황이 있으신가요? 문이 굳게 닫힌 것 같은 구직의 현장이나 익숙한 사람과 이별한 자리, 혹은 낯선 출발선에 선 순간들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순간을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 때가 아니야', '때가 안 됐어.' 그런데 전도자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 안에 있다고. 마치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제 박자에 들어오도록 기다리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박자를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첫사랑의 설렘, 실패의 아픔, 기다림의 지루함, 성취의 기쁨 — 그 모든 악보가 이미 그분 손에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악기를 연주하는 데 집중하는 것입니다. 지금이 어떤 계절이든, 그 계절에 맞는 음표를 내는 것. 그것이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심할 게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혹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십니까? '그래, 하나님이 때를 정하셨다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구나.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아닙니다. 전도자는 우리를 수동적인 사람으로 만들려고 이 말을 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이 때를 정하셨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때'라는 뜻입니다. 지금 내가 마주한 이 계절이,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바로 그 시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울 때가 있다면 그 울음을 다 울어야 합니다. 웃을 때가 있다면 그 웃음을 온전히 누려야 합니다. 심을 때가 있다면 씨를 뿌리는 수고를 아까워하지 말아야 하고, 뽑을 때가 있다면 손에 물집이 잡히더라도 뽑아내야 합니다. 모든 계절은 그 계절 나름의 의미와 할 일이 있습니다. 봄에 추수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가을에 씨를 뿌리려고 해도 안 됩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계절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 계절에 합당한 일을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때를 인정하는 삶입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겨울' 같은 때를 지나고 계신가요? 보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겨울. 그런데 성경은 겨울도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겨울에는 겨울이 하는 일이 있습니다. 땅속에서 뿌리를 더 깊이 내리는 일, 씨앗이 스스로를 보존하며 봄을 준비하는 일. 겨울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계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계절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당신에게 주신 계절이 어떤 계절이든, 그 계절을 온전히 사십시오. 서두르지도 말고, 낙심하지도 말고, 지금 여기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3. 하나님은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십니다
그런데 전도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3장 11절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시기에 맞게 아름답게 지으셨다.' 아름답게, 이 말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그 '좋았더라'와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처음 창조하실 때 쓰신 바로 그 표현으로, 지금 이 순간 당신 인생의 이 계절을 묘사하고 계십니다. 좋았더라, 아름답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이 자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다고요. 이해가 안 되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취업 준비가 길어질 때, 관계가 깨질 때, 내가 왜 이 시간을 견뎌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전도자도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9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애써서 수고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인생의 흐름을 바꾸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도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깨닫지 못한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깨닫는 게 아니라, 그분을 경외하며 오늘을 사는 것이라고요. 마치 퍼즐을 맞출 때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해도 조각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끼워 맞추듯, 지금 이 조각이 어디에 들어갈지 보이지 않아도 손에 쥐어진 이 조각을 신중히 다루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지금은 씨 뿌리는 때일 수 있습니다. 뿌린 씨가 흙 속에서 썩어 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 씨는 자라고 있습니다. 결실은 다른 때에 있겠지만, 지금 이 수고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수고를 통해 당신을 빚고 계십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하나님이 지금 이 때를 통해 무엇을 하고 계실까'를 질문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분의 손길을 신뢰하는 것 자체가 오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당신에게 주신 이 계절, 이 시간이 아름답다고 말씀하시니, 우리는 그 말씀을 붙들면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 때를 아름답다고 하신 것은, 지금의 고통이나 어려움이 그 자체로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도자는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깨닫지 못한다고. 그러니까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상황은 전체 그림의 일부일 뿐입니다. 마치 실로 짜여지는 자수와 같습니다. 자수의 뒷면을 보면 실이 이리저리 얽히고 설켜 무슨 모양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앞면을 보면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뒷면을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실이 엉킨 것 같고,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앞면을 보고 계십니다. 그분의 손에서 이 모든 실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날 것을 아십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할 일은, 이 엉킨 실을 억지로 끊어내거나 풀어헤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손길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씨가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듯, 지금의 시간이 당신 삶에 깊은 뿌리를 내리게 하십시오. 그 뿌리가 자라서 언젠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신다고. 그 약속을 믿고 오늘 하루를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및 적용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묵상한 말씀을 마음에 모아 봅니다. 전도자는 말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선물합니다. 하나는 위로입니다. 지금 내가 겪는 힘겨운 계절, 이해되지 않는 기다림,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때 안에 있다는 위로입니다. 다른 하나는 도전입니다. 이 계절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하나님이 지금 여기서 주시는 은혜를 붙잡으라는 도전입니다. 우리는 흔히 '언젠가'를 꿈꾸며 삽니다. '취업하면', '결혼하면', '아이가 크면' 그때는 제대로 살겠노라 다짐합니다. 하지만 그 '언젠가'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하루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오늘'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날을 세는 지혜는 단순히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하는 법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 순간이 얼마나 귀한지 깨닫는 법입니다. 마치 한 해의 제철 농산물을 놓치면 다시 맛보려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인생의 제철도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은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는 기회가 되고, 구직의 기다림은 겸손을 배우는 학교가 되며, 치열한 일터는 당신을 정금같이 빚어가는 하나님의 작업장이 됩니다. 이 계절을 '그냥 견디는 시간'으로 보낼 것인지,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누릴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어려움과 불안이 우리의 시선을 가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확인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시기에 맞게 아름답게 만드신다는 진리.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과거에 대한 후회에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십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이렇게 살아보시면 어떨까요. 아침에 눈을 뜨면 '하나님, 오늘 이 하루도 당신이 정하신 때입니다. 제가 이 계절을 온전히 살게 해주소서' 하고 기도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루를 마칠 때, '하나님, 오늘 이 계절 속에서 당신이 주신 은혜가 무엇이었는지 보여주소서' 하고 돌아보십시오. 그렇게 오늘을 살아갈 때, 우리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가 기다리던 '언젠가'는 사실 오늘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 이 제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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